회계법인 "연말결산 더이상 대충대충은 없다""회계법인이 부적정 판정을 내면 외자유치도 물건너 가게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근 외자유치 성사를 눈앞에 두고 신뢰도 높은 회계법인의 감사의견서 제출을 요청받은 모 상장기업은 마땅한 회계법인을 찾지못하고 있다며 이처럼 고민을 털어놓았다.
연말결산 법인에 대한 회계감사가 시작되면서 기업들이 '감사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대우와 기아차 부실감사에 따른 퇴출 및 소송 소용돌이에 휘말린 회계법인들이 '칼날'을 세우는 바람에 결산기업의 재무제표가 무더기로 낙제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벼랑의 회계법인과 고개숙인 기업
업계 수위인 삼일회계법인은 최근 결산감사를 앞두고 분식회계 혐의가 짙은 기업을 담당하는 감사팀 수장(파트너ㆍ임원급)을 전원 물갈이했다. 안건회계법인도 업종별 감사책임자인 본부장급을 모두 40대 신진인사로 교체했다.
수임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눈감아주기식' 감사를 해오던 관행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대부분 빅5 회계법인들은 부실징후가 명백한 기업에 대해서는 철저히 사전조사를 실시하고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수임 자체를 거절하고 있다.
S회계법인 J상무(38)는 "1억원의 수임수수료를 받으려다 부실감사로 적발되면 수백억원의 소송에 휘말리는 현실에서 누가 감히 모험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내년 3월말 정기주총을 앞두고 회계감사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기업들은 안절부절이다. 자본금 규모 70억원 이상으로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업체는 비상장(등록)업체를 포함해 모두 8,100여개.
이 가운데 85%정도인 12월 결산법인 7,000여 기업이 이달부터 자산실사 등 본격 감사에 들어가는데 대기업마저 부실회계가 탄로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체 회계에 자신없는 기업들은 회계전문가를 동원해 재무제표를 새로 작성하거나, 아예 부실회계를 눈감아 줄 수 있는 소규모 회계법인을 찾아 나서는 형편이다.
이와 관련, 금융감독위원회는 최근 부실회계를 묵인ㆍ방조하는 회계법인에 대해 등록취소 등 중징계를 내리는 방향으로 외부감사 관련규정을 강화했다.
무더기 부적정 판정 우려 더불어 감사보고서의 주 이용고객인 금융권과 투자자의 소송이 잇따르면서 회계법인들은 감사이 기율을 강화해야할 처지다. 워크아웃중인 해태제과의 감사보고서를 작성한 안건회계법인의 경우 4,000억원의 부실회계 혐의로 지난해 말 형사고발된 상태에서 채권 은행단의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대비해야 할 판이다.
금융감독원 유재규(柳在圭) 회계제도실장은 "금융기관까지 손해배상 소송에 본격 가세할 경우 회계법인은 생존이 어렵다"며 "코너에 몰린 회계법인들이 무더기로 부적정의견을 내는 극단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긍정효과 기대
재무제표가 부실해 회계법인으로부터 부적정의견을 받는 기업들은 은행권 신규차입은 물론 대출연장도 어렵게 된다. 기업의 신뢰도 하락에 따라 신용도와 주가의 동반추락도 불가피하다. 때문에 회계법인의 엄격감사는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기업구조조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대 장하성(張夏成)교수는 "회계법인이 기업부실을 눈감아 주는 관행은 기업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며 "회계법인이 제 기능을 찾게되면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입력시간 2000/12/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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