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금융권에 금액불문, 금리불문, 기간불문 등 '3불문(不問)'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액수가 얼마든, 이자율이 얼마나되든, 만기가 얼마짜리든 연말만 넘기고보자'는 자금확보비상이 대부분 기업자금라인에 걸린 것이다.
현 금융시장은 직접금융, 간접금융, 심지어 사(私)금융까지 기업의 '돈 길'이 모두 막혀버린 상태다. 직접금융시장은 주식시장 침체로 증자는 물거너갔고 회사채 시장은 초우량재벌, '그들만의 시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기업들의 주요 자금공급채널인 간접금융의 경우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비상에 합병 바람까지 몰아치면서 돈이 남아돌아도 대출라인을 끊어버렸고, 중소기업의 주된 대출창구인 신용금고는 아예 고사(枯死)직전에 몰려있다.
그나마 사채시장마저 프리(pre) 코스닥과 벤처 등에 자금이 묶이는 바람에 '개점휴업'상태에 돌입했다.
돈있어도 대출안해 BIS관리에 따른 대출한파는 연말이면 늘 겪는 현상. 하지만 올해가 유독 심각한 것은 '합병물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기업영업 담당자는 "합병이 되면 결국 사람을 자를 것이고, 결국 그 기준은 얼마나 부실을 야기했느냐가 될 것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원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은행들은 이미 책정된 크레딧라인(신용한도)를 제외하곤 신규 기업대출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다만 BIS 기준상 위험가중치가 일반대출의 절반인 주택담보대출에만 모든 은행이 매달리고 있다.
한 중견기업의 자금담당 임원은 "투자적격(BBB-) 이하 기업은 아무리 담보를 많아도 대출을 받지 못한다"이라며 "사채시장에 가도 금리가 월 3~4%에 달해 물건을 팔아서는 도저히 이자비용을 갚을 수가 없고, 이마저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명동의 한 사채업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직후보다 심리적 위축감은 훨씬 더하다"고 말했다.
초우량으로만 몰리는 직접금융 '초우량' 타이틀이 없는 기업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11월 회사채 발행은 프라이머리 CBO(발행시장 채권담보부 증권)가 1조원 발행에도 불구하고 7,000억원이나 순상환됐고, 10월 1조2,000억원을 순발행됐던 기업어음(CP)도 지난달 1조1,000억언 순상환됐다.
특히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간 발행금리 격차는 각각 3.68%포인트(회사채), 4.32%포인트(기업어음)로 지난 9월이후 계속 벌어지고 있다.
신용경색 언제까지 가나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13일 "계획된 구조조정이 내년 2월 마무리되더라고, 내년 상반기 회사채 만기가 대거 몰려있어 자금시장 안정대책은 계속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채권형펀드가 연내 10조원 추가조성되더라도 '합병'문제가 매듭되고, 제2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좀처럼 먹혀들어가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 단계에선 어쨌든 합병 등 구조조정을 빨리 매듭짓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신용보증기관의 보증을 대폭 확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0/12/1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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