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국가보다 일본 기미가요가 '진취적'이라고 평한 글을 오래 전 문화계 저명인사의 수필집에서 읽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과,"모래가 바위가 되고."하는 가사가 대조적이란 얘기다. 수필을 두고 논란할 일은 아니고, 또 기미가요 곡조보다는 애국가가 씩씩하다.기미가요가 정작 논란 되는 이유는 그 진취적 가사가 '천왕의 천년만년 치세'를 기원, 제국주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기미가요를 정식 국가로 격상 시킨 것에 안팎의 비판이 많았다. 사실 나름대로 소중한 역사와 전통이 담긴 국가를 두고 시비할 일은 아니다. 다만 과거 죄상을 뉘우치는 데 소홀한 국가적 행태가 논란을 부르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철저한 과거청산과 도덕적 처신으로 거듭 난 독일은 아직 옛 국가를 마음대로 부르지 못한다. 19세기 프러시아 시절 하이든의 곡에 가사를 붙인 '독일인의 노래'는 1절이 "도이칠란트 최고"란 구호로 시작한다. 원래는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게르만 민족에게 국가관을 촉구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나치 과거 등과 연결돼 오만한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 때문에 전후 서독은 "단결ㆍ 정의ㆍ자유"란 중립적 구호로 시작하는 셋째 만을 부르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여름 한 정치 지도자가 모교행사에서 금기시된 국가 1절을 부른 사건이 온 나라에 논란을 일으켰을 정도다.
이렇게 보면, 국가는 역시 상징이다. 내용보다 어떤 가치를 상징하느냐가 중요하다.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이에즈'는 "독재의 멱을 따고, 조국 땅을 더러운 피로 적시자"는 살벌한 전투적 구호로 일관한다. 그런데도 가사를 고치자는 제안이 에피소드에 그치는 것은, 시민혁명 당시 시민군의 진군가였던 이 노래가 프랑스인의 자유 의지를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론은 러시아가 최근 옛 소련 국가를 복권 시킨 것을 어떻게 볼 것 인가다. 2차 대전 중 제정된 소련 국가는 힘찬 곡조에 가사도 "적을 무찔러 나아가자."는 등, 군가나 마찬가지다.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한 옐친 전 대통령은 이 국가가 레닌과 스탈린을 언급하는 등 공산체제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망치와 낫이 그려진 국기와 함께 폐지했다.
대신 공산 혁명 전 미하일 그링카가 작곡한 평화적 곡조의 애국가를 부활시키고, 국기도 옛 제정 러시아 시대의 삼색기를 도입했다. 소련의 유산은 모두 죄악시한 발상이다.
공산주의와 결별한 러시아가 소련 국가를 부활시킨 계기는 약간 엉뚱하다. 옐친이 도입한 애국가는 곡조가 유장한데다가, 우습게도 가사가 없다.
이 때문에 올림픽등 국제 경기에서 선수와 관중의 사기를 북돋우는 국가 연주 때 함께 따라 부를 수 없다는 불만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 축구팀 코치가 공론화했다. 그러자 푸틴 대통령이 기다렸다는 듯 입법안을 밀어 부쳐 며칠 전 의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통과시켰다.
옐친과 우파세력은 이를 "어두운 과거로의 회귀"라고 신랄하게 성토한다. 외부세계의 시각도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푸틴과 의회가 다수 국민의 뜻과 어긋나게 무모한 복고(復古)를 지향한다고 볼 수는 없다.
푸틴이 물려 받은 러시아의 가장 큰 고민은 정체성 상실이다. 러시아 국민은 옐친이 경험하지도 않은 옛 러시아적 가치와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외친 지난 10년간 혼돈과 추락을 거듭, 정신적 공황 상태에 이르렀다. '강한 러시아'를 표방한 푸틴에게 긴요한 것은 상실한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다.
푸틴은 이 개혁과 재건작업의 정신적 지주를 국민이 한때 민족적 자존과 정체성을 느꼈던 옛 소련에서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나치 침략을 물리치고, 강대국을 건설하는데 국민의 의지를 북돋아 주었던 소련 국가는 그 '위대한 가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념과 무관하게, 국민에게는 '함께 부르는 노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0/12/1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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