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라 마셔라. 한잔 술 없어 빌붙어 마셔도, 더러운 잔 받진 않는다." 주당의 호기에 '댄서의 순정', '고래사냥', '청춘' 등 유행가가 줄줄이 꿰어져 나온다. 그러나 이 연극을 본다면 술을 콸콸 들이 붓기는 더 이상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술 소비량 세계 제 8위의 나라 한국은 이제 연말 성수기를 맞아 명성을 다시 톡톡히 입증할 태세다. 극단 산맥의 '해는 붉은 얼굴로 인사하네'는 술이라면 관대해지는 나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되는 음주문화 연극이다. 극은 알코올 중독이 개인적ㆍ사회적 질병이라 말한다.
중년의 사업가와 샐러리맨이 알코올 중독 클리닉 신세를 지고 가정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풍경들이다. 호기를 과시할 데라곤 3차, 4차로 이어지는 술자리밖에 없는, 우리의 필부 두 명이 주인공이다. 굿 등으로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두 사람은 자살을 꿈꾸다, 노모의 눈물에 떼밀려 결국 병원에서 만난다.
메시지를 보다 선명히 전달하기 위해, 이 연극은 출연 배우들이 사전 제작한 영상물의 도움도 받는다. 술을 두고 중독자와 노모가 벌이는 실랑이, 술먹다 쓰러져 발작하는 장면 등 출연자들이 미리 제작해둔 6분짜리 영상이다. 세트의 재빠른 전환, 플레이백 반주에 얹혀 실연되는 춤과 노래, 코믹한 전개 등은 1시간 30분에 달하는 극의 무게를 휘발시킨다.
말미, 크리스마스에 이르러 힘겹게 재활에 성공한 두 사람의 모습으로 극은 끝난다. 팽개쳐졌던 삶과 가족의 의미도 그제서야 되살아 온다.
연극의 사실적 전개는 6월 이후 한국음주문화연구센터(이사장 성희웅)측이 제시해준 자료의 덕택이다. 극단은 또 AA(Alcohol Anontmous:익명의 알코올중독자) 한국본부에 가서 중독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더욱 생생한 자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수전증, 환청과 환시 등 알코올로 인한 뇌손상 장면이 생생히 재연되는 것은 그 덕택이다.
일대 토사곽란이 기다리는 31일, 이 연극은 연구 센터가 명동 일대에서 벌일 '건전음부문화캠페인'과 맞물려 막판 기세를 올릴 전망이다. 서광석 작ㆍ연출, 계정일 최창석 김태엽 등 출연.
"나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 술을 좋아할 뿐"이라 강변하는 두 사람에게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22~31일까지 명동 YWCA 청소년 문화공간 마루 소극장. 월~금 오후 7시, 토ㆍ일 오후 4시 7시.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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