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간힘 끝에 최근 스스로 영업정지를 신청한 한 우량 신용금고의 관계자는 12일 "이건 완전히 유탄에 당하는 격"이라며 통탄했다.그의 억양은 마치 적전(敵前)에서 실탄이 바닥난 전장의 소총수 같았다. 그는 "불길을 잡아야 할 소방수들이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며 "'1~2개 금고 추가 적발' 발언 이후 최근 3일간 무려 300억원 가까이 빠져나간 상황인데 누군들 견디겠느냐"며 최근 문제의 발언을 한 정부당국자들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동아금고가 영업정지 된 9일부터 이 금고로 갑자기 몰려든 예금주들은 "안심하라"는 직원들의 다급한 하소연에 "나는 당신들을 믿고 싶지만, 어떤 금고가 그 '1~2개'인지 당신은 아느냐"고 따졌다. 결국 이 한마디는 고위당국자들의 실언이 어떻게 '패닉(공황)'을 야기 했는 지 생생히 보여준다.
신용금고에 대한 불신은 대주주 불법대출을 자행한 일부 신용금고의 책임이 크다. 또 어떻게 보면 최근의 격동은 역설적으로 시장이 신용금고의 옥석을 스스로 가리는 계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무책임인 '말' 때문에 시장의 불안이 증폭됨으로써 아직도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자금창구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우량금고까지 위기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알랜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한 마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커서 이른바 '그린스펀 효과'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자신의 '말'이 시장에 던지는 파장을 아주 잘 알고 있고, 그만큼 자기 말을 잘 통제했기 때문에 시장을 견인하는 긍정적 '구두개입'으로 정평을 얻었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금융당국자들은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경제부
장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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