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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西安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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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속으로] 西安사건

입력
2000.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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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2월12일 공산군을 치기 위해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에 머무르고 있던 북방의 군벌 장쉐량(張學良)이 난징(南京)에서 독전(督戰)하러 온 장제스(蔣介石)를 감금하고,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내전의 중지와 거국 일치에 의한 항일(抗日)을 요구했다. 이것이 이른바 시안 사건이다.그 당시 장제스의 난징 정부는 항일전보다는 공산당과의 전투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내전 중지와 항일 민족 통일 전선의 결성을 요구하는 중국 민중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대공(對共) 전선의 최일선에 있었던 장쉐량이 대승적으로 거사해 민중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장제스는 이를 수락하고 25일 석방돼 난징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국공내전이 중지되고 제2차 국공합작이 이뤄졌다.

이 사건의 주역 장쉐량은 28년에 폭사(暴死)한 그의 아버지 장쭤린(張作霖)과 마찬가지로 중국 혁명을 가로막는 군벌에 지나지 않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민족과 민중의 편에 서서 중국 역사의 물꼬를 바꾸었다.

제1차 국공합작은 24년 쑨원(孫文)이 이끄는 국민당이 제1기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소(聯小)ㆍ용공(容共)ㆍ부조농공(扶助農工)'의 3대 정책을 채택해 이뤄졌다가, 27년 장제스가 상하이(上海)에서 반공 쿠데타를 일으켜 와해된 바 있다.

제2차 국공합작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결렬의 조짐을 보이다가, 일본의 패망 뒤 양측이 전면전을 벌임으로써 와해됐다.

이 내전은 공산당이 이끄는 인민해방군의 승리로 끝나 49년 10월 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고, 국민당 지도부는 대만으로 패주했다. 81년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의 국민당 정부에 중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ㆍ제휴하자는 이른바 제3차 국공합작을 제의한 바 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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