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향상뿐 아니라 두뇌개발ㆍ예절습득에 도움"붙이면 젖혀라, 끊으면 뻗어라."
"4사6생 6사8생, 2의 1에 수가 있다."
"좌우동형은 중앙이 급소, 두점머리는 두드려라"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 '한빛 어린이 바둑교실'(원장 김홍렬). 입구에 들어서니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귀를 찌를 듯 울려 펴진다. 한 명이 벽에 붙은 바둑격언을 큰 소리로 선창하면 나머지는 절도 있게 입을 맞춰 복창을 한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대여섯살 코흘리개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바둑판 앞에 꼿꼿이 정좌를 한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원장 선생님의 간단한 바둑강의가 끝나고 나니 실전 훈련 시간. 30여 명의 아이들은 입문반과 초ㆍ중급반, 고급반으로 흩어져 저마다 1대 1 대국에 들어간다. 바둑돌을 놓는 모습은 초급자라고 흐트러지거나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세를 바로하고 차분한 마음을 갖는다' '서로 상대를 존중한다' '우선 생각하고 그 다음 돌을 집어서 놓는다''져도 화를 내지 않는다' '이겨도 자랑하지 않는다'.. 벽면을 가득 채운 바둑예절 경구 그대로다. 기력이 15급(총 30급 단위 기준) 정도라는 초ㆍ중급반의 김시은(8ㆍ이화초등 2)양은 "친구들과 장난치는 것보다, 컴퓨터 게임 하는것 보다 바둑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김양의 어머니 은경희(38)씨의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다. "아이가 놀랍도록 침착해졌고 참을성도 많아졌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바둑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빠까지 3대가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겁니다."
겨울방학이 다가오면서 어린이 바둑교실의 열기가 뜨겁다. 사고력과 집중력을 길러주기 위해 자녀를 바둑교실에 보내는 부모도 많아졌고, 방학 기간에 맞춰 개강 시간을 방과 후에서 오전으로 앞당겨 수업을 강화하는 바둑 학원도 늘고 있다.
1~2급 수준의 상급자들에게도 방학은 단기간에 기력을 집중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여서 어느 때보다도 바둑교실은 '꿈나무'들로 붐빈다.
한국기원 산하 전국바둑교실협회(회장 지형복ㆍwww.Kbaduk.net)에 따르면 12월 현재 정식 인가를 받고 운영 중인 전국의 어린이 바둑교실은 370여 곳. 대개 아마 3단 이상의 강자들이 원장 겸 강사로서 바둑 보급에 나서고 있는데 비인가 학원까지 합치면 약 1,000 곳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바둑교실은 통상 기초반(입문반)부터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나뉜다. 기초반에서는 둘러싸이면 잡힌다는 사활의 기본 개념부터 돌이 살아가는 길(활로), 돌을 잡는 기술, 연결과 끊기 따위의 핵심적인 바둑 원리를 가르친다.
천부적인 기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루 1~2시간씩 서너달이면 기초 정석을 깨우치고 바둑을 하나의 '놀이'로서 즐길 수 있을 정도가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어린 나이는 워낙 흡수력이 빠른 때라 평균 1년 내지 1년 6개월 가량만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누구나 중급 이상으로 기력이 성장하며, 그중엔 초단 수준까지 올라 예비 프로기사를 교육하는 전문 바둑도장이나 한국기원 연구생에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바둑교실의 수강료는 한 달 평균 7만~8만 원 선.
사실 아이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은 기력 향상 자체보다는 다른 지적 능력들을 동시에 계발시켜 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바둑은 상대가 있는 게임인 만큼 예절과 규칙도 배울 수 있고, 논리적인 사고와 창의력도 길러준다.
전국바둑교실협회 지형복 회장은 "바둑은 머리 속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손으로 옮겨 놓는 게임이므로 사고력과 수리력, 침착성과 집중력을 기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며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한 5~13세의 시기에 바둑을 가르쳐 보라"고 권고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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