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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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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 잊지 못할 일]

입력
2000.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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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늦가을에 평양을 방문했다. 실로 50년 만에 밟는 땅이었다. 보통강을 끼고 서 있는 보통문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그 강가에서 놀던 때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다.47년 봄 우리 식구는 남쪽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작전을 짰다. 우선 분산해서 가는 것이 안전하다 하여 나는 형님이 주선한 교회의 중년 가족과 팀이 되었다. 나는 그때 중학교 1학년, 열네살이었다. 교복과 모자를 쓴 채 가는 것이 좋다 하여 그렇게 했다.

형님은 해주까지 우리 일행과 동행해서 이것 저것을 주선해주고는 돌아갔다.

여관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밤 배를 타기 위해 우리 일행은 보따리를 들고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해변가로 갔다. 거기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와 있었다. 한 30분쯤 기다렸을까. 저 만치서 숨가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모래밭에 엎드렸다.

하지만 10분도 안돼 우리는 발각되고 그들의 호령에 따라 일어섰다. 그들은 집총을 한 해안경비대원들이었다. 우리는 승선 직전에 체포된 '조국을 등진 배신자들'이 되었다.

우리는 해안경비대 청사 앞에 줄을 서서 짐과 몸 수색을 따로따로 받았다. 그런데 앞에서 검색을 받은 사람들이 신분증과 돈을 압수한다고 했다.

이 말은 삽시간에 퍼졌고 우리는 제각기 지혜를 짜기 시작했다. 나는 내 짐을 앞쪽으로 갖다 놓고 돌아와 줄을 지켰다. 그리고는 내 짐의 검색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먼저 짐 검사가 끝나고 우리 줄이 줄어들어서 짐 가까이 왔을 때 나는 경비대원들이 보지못하는 사이 학생신분증과 돈을 짐 속에다 쑤셔넣었다. 그들은 몸 수색을 하면서 "왜 돈이 이것뿐이냐, 학생증은 어디 있느냐"고 다그쳤지만 버텼다. 그리고 통과.

우리는 어느 건물 2층에 갇히고 경비원은 계단 근처에 앉아서 경비를 섰다. 그리고 한 세 시간쯤 흐른 새벽녘에 나를 인솔하던 분이 눈짓을 했다. 경비원이 잠들었다는 신호였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처럼 짐을 챙겨서 경비원 앞을 지나 그 건물을 빠져나왔다.

한참을 걸어서 어느 초가집을 찾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새벽잠을 깨웠다. 그들은 너무나 익숙하게 말을 낮추라는 손짓과 함께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는 그날 밤으로 다른 안내원을 찾아서 배를 타는 데 성공했다.

해주에서 배를 타고 38선을 넘었던 것이다.

오재식 월드비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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