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로 IMF 위기 3년을 맞았고, 한국일보는 '다시 경제를 살리자'라는 상중하 특별기획기사(12월 2,4,5일 1면 보도)를 지면에 올렸다.한국경제가 재차 위기국면에 빠져들고 있으니 시의적절한 시도이다. 정치권의 무사안일주의, 경상수지 불안과 재정수지 악화, 그리고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를 중요한 문제점으로 짚었다.
특히 '작고 개방된 경제'인 우리나라의 특성에 비추어 흑자 경제 기조를 확립해야 한다는 방향 제시는 크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시장주도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소리만 지면에 있을 뿐, 개혁의 방향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우리 나라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크고 개방된 경제'인 미국 모델을 무차별 추종해온 개혁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도마에 오른 한전 민영화에 대해서도 민영화 불가피론을 대전제로 기사의 방향이 잡혔다. 전국의 대학교수 153명이 민영화 반대성명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고, IMF와의 당초 합의 사항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정부의 궁색한 변명을 질타하는 예봉도 없었다.
아르헨티나가 또다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고 한다. 긴 눈으로 바라보면 이들 중남미 국가들은 1982년 이후 반복적으로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론자들은 강변한다.
사회적ㆍ정치적 저항 때문에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이 원인이지, 개혁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것이 맞는 말일까. 인간을 빼버린 정책이 계속 실패를 부르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이 개입되지 않으면(예를 들어 노조가 시장정책에 저항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책론자의 입장은 너무도 허황된 것이 아닐까.
금융파업도 그렇고, 의료파업도 그렇고, 이해관계자의 집단적인 저항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이를 사전에 여과시키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고, 일렬종대로 보수진영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는 대다수 언론도 이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현재 대우자동차 감원, 금융지주회사 통합,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으로 노동계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언론마저 일거에 이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단순 매도한다면 타협의 여지는 봉쇄되고 만다.
오히려 시장주도의 개혁이 왜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주지 못하고 있는가를 파헤쳐야 한다. 정작 모든 부실업체와 부실금융기관을 매몰차게 칼질하고 나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게 되는가를 시장론자들에게 되물어봐야 한다.
경제부장이 11월28일 칼럼에서도 지적했지만 한국경제는 이미 중남미화 현상의 징후가 뚜렷하다. 은행권과 자본시장에 이미 외국자본이 강력한 지배세력으로 등장했고, 자동차업ㆍ건설업 등의 불안으로 인해 고용창출 기반이 흔들리고 있고, 부유층의 달러 사재기에서 보여지듯이 국내자본의 해외도피 가능성마저 현저히 예견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DJ노믹스의 원점을 짚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이헌재 전 재경부 장관은 총선을 앞둔 4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경제도 미국처럼 정보통신기술이 발전을 주도하면서 물가걱정 없이 장기간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신경제의 호순환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그리고 많은 경제학자들과 관료들은 이에 동조했다.
불과 8개월 전의 일이다. 언론이 이제 이들로 하여금 아직도 신경제의 환상을 자신있게 피력할 수 있는지를 캐물어야 한다.
이찬근ㆍ인천대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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