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은 한국프로축구에서 가장 파장이 컸던 사건으로 꼽힌다. 1986년 3월30일 계약금 1억5,000만원, 연봉 2,400만원에 현대와 입단계약한 지 12일만에 대우로 가겠다고 번복 발표함으로써 시작된 김종부 파동은 이후 고대 체육위원회의 선수등록 취소요청에 이어 월드컵 대표팀 제외, 현대팀 해체파동, 축구협회 집행부 총사퇴 등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김종부는 우여곡절끝에 멕시코월드컵에는 뛰었지만 이후 22개월간 방황을 해야 했다. 88년 포철에 임대선수로 입단했지만 끝내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해 그에겐 늘 '비운의 스타'란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김종부 파동은 프로축구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신인선발에 자유계약제가 아닌 드래프트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프로연맹은 내년부터 드래프트제를 폐지하고 자유계약제를 전면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드래프트제의 폐해가 너무 커 축구발전을 가로 막고 있다는 위기의식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프로축구의 모체가 대기업이고, 구단의 존립 목적이 홍보에 있다는 점에서 또 다시 김종부 파동이 재현될 수 있는 원인은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유계약제 도입은 축구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일본 J-리그를 신중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일본프로축구는 1, 2부리그를 합해 절반 이상이 흑자를 내고 있다. 그것은 자생력을 위한 팀들의 노력때문이다. 팀들은 우선 선수 몸값을 대폭 내렸다. 신인선수들의 연봉 상한액은 480만엔(약 4,800만원)이고 5경기를 출전한 뒤 정식 계약한다.
말하자면 선수검증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출범 초창기에 연봉 1억엔짜리 선수가 수두룩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팀이 살아야 프로축구도 살 수 있다'는 인식이 구단은 물론 선수와 축구인들 사이에 팽배해진 것이다.
일본의 성공요인중 또 하나는 유소년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에 있다. 말하자면 어린 선수들을 클럽이 양성함으로써 선수수급에 자생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도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 일본과 달리 우리는 학교팀이 아닌 경우 선수등록이 되지 않아 자체 양성이 불가능한 것이다.
구단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 제도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자유계약제는 실패할 것이 분명하다.
/유승근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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