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농작물 백가지글 이철수, 사진 이원규, 현암사 발행
"먹을 게 정말 귀했다. 어머니가 밥 위에 얹어 찐 감자를 젓가락에 꿰어 주시면 우선 감자에 붙은 밥풀을 갈빗살처럼 뜯었다.
감자를 혀로 살살 핥으며 삽짝 밖으로 나가 내 손에 먹을 게 들렸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데 그날 따라 아이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생활이 고단해지면 가난했던 옛 기억을 떠올린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농작물 백가지'의 저자 이철수(53)씨도 그랬다.
건국대 원예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해까지 경남 함양군 안의중학교에서 농업을 가르친 그가 1950년대 풍경을 마음 먹고 그렸다. 그는 현재 덕유산 자락 솔숲마을에서 우리 작물만을 재배하는 농부이다.
책은 벼, 보리, 참깨, 콩, 호박, 감자 등의 생태를 다룬 농작물 도감만은 아니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옛날 풍경, 그렇다고 궁상맞은 타령만은 아닌 살가운 정경들이 책을 가득 메운다. 뱅뱅 돌려가며 앞니로 껍질을 깎아내고 먹었던 무의 달콤쌉싸름한 맛처럼.
"감나무 아래 멍석을 깔고 보리밥 한 덩어리를 찬물에 말아 풋고추를 생 된장에 찍어 먹으면 그 얼얼한 맛이 콧잔등에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농부로 변신한 저자는 우리 농작물에 대한 찬사를 빠뜨리지 않는다. 바람소리마저 거름이 돼 쑥쑥 잘 자라는 수수, 이슬을 먹고 힘을 내 슬금슬금 흙을 밀어내며 살을 보이는 무, 심을 밭을 대강 닦달해도 별 탈이 없는 콩..
옛 사람의 지혜도 강조한다. 메주를 매달 때 짚으로 멜빵을 한 이유는 짚 속에 메주나 청국장을 띄우는 미생물인 바실루스 곰팡이가 살아있기 때문이고, 감자 싹이 한 뼘 정도 자랐을 때 주위 흙을 긁어 덮어주는 북주기는 땅속줄기를 많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농사가 무지렁이 몫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식자는 범접 못할 농사꾼만의 철학이 있다.
열매가 많이 열려야 하는 깨나 콩 같은 작물은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뜻으로 여자 오줌을 뿌렸고, 무나 가지처럼 굵게 키워야 하는 것은 사내 오줌을 뿌렸다. 하찮은 잡초에게까지 사람의 감성을 부여한 이 유순함이 바로 우리네 농심(農心)이었다."
그러나 농사는 역시 힘들었다. "벅적벅적 달려드는 더위가 한여름보다 더하다. 바늘처럼 예리한 보리 까락이 눈알까지 후비려 한다.
콩밭매기는 또 어떤가. 삼베 수건을 푹 눌러 쓰고 콩밭을 한참 기어 다니다 보면 지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오금이 뻣뻣해진다."
이렇게 소개한 우리 농작물이 식용작물 8종, 원예작물 12종, 공예작물 7종 등 27종이다.
여기에 해당 작물에서 언급한 기장, 조, 도토리까지 합치면 얼추 100종이 된다. 벤처 신화에 실망했거나 세상에 힘겨워 하는 독자에게는 어머니 손처럼 따스한 책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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