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상황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보면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라는 한 목소리 뿐이다. 일견 지당한 말씀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뭔가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 흔드는 것 같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그렇게 잘 알면서 왜 진작 제 목소리들을 내지 못하고 여태껏 침묵했는지 일반 시민들은 궁금할 뿐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예측이란 없다. 학자가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결과적으로 옳은 얘기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상황에 대해서는 내용이 서로 다른, 바른 소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IMF 졸업이다 뭐다 해가며 희희낙락 하던 일년 전에도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있었다. 이들이 지적했던 것은 위기의 가능성이지 위기가 올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모난 목소리를 허용하지 못한다.
소수의견 정도로 봐줄 수도 있는데도 외화보유고가 충분하고 거시지표가 좋은데 웬 딴 소리냐고 내리 누르는 것이 대세였다. 권위주의의 구태를 벗지 못한 정부가 나서 한 목소리를 조장하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 관한 문제를 이런 획일적 진단에 맞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학자들이 몰랐다면 문제가 큰 것이다. 알고도 가만히 있었다면 비겁한 일이고.
예상과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경우에 대비해 다양한 정책대안을 생각하자는 것이 왜 잘못됐다는 것인가. 1997년 가을,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충분히 감지되는 데도 정부는 외환보유고 감추기에 급급했고 일부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외환위기는 불가능하다는 식의 선언을 서슴지 않았다.
IMF에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리 했다면 향후의 거시정책이나 개혁프로그램의 뼈대도 좀더 신중하게 따져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올해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문제가 표면화하고 자금경색이 위험수준으로 치닫던 지난 초여름 무렵부터 위기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폭락한 9월에 본격적으로 제기된 경제위기론은 구조조정 실패에 따른 금융경색이 실물위기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떳떳한 주장이었다. 그런데도 상당수 학자들은 외환보유고 타령이나 하며 정부 의견에 맞장구 치기에 바빴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구조조정을 외치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정부 잘못을 시인하는 이 시점에서 새삼스레 구조조정을 열심히 해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자고 외치는 것은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까.
지금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한 두 가지 상책을 추려 정책능력을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데 모든 개혁을 다 잘해보자는 원론이나 반복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실업은 구조조정의 당연한 귀결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는 것도 보기 민망하다.
이런 말을 하기 전에 가능한 실업대책이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이면계약 같은 땜질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고용대책을 세워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정책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구조조정하면 됐지 경기부양이 웬 말이냐고 발끈하는 것도 보기 딱하다. 불확실성을 제거해 소비 투자심리를 안정시키는 장기요법은 구조조정이지만 당장 급감하는 총수요를 진작시킬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
어설픈 경기부양은 곤란하지만 재정지출과 같은 적절한 단기대책은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능력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기도 전에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식의 흑백논쟁을 펴는 분위기는 곤란하다. 원칙에 충실하는 것과 원론 수준의 처방을 내세우는 것은 다르다.
내부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용인하지 못하고 급하면 외국전문가들 견해나 구하는 지적 사대주의는 당파싸움하던 이조 시대 때의 유물이 아니던가.
전주성ㆍ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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