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단행된 일본 내각개편은 여러 가지 화제를 낳았다. 지난달 20일 가까스로 국회의 내각 불신임 결의를 모면한 모리 요시로(森喜郞)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넘겨보려고 혼신의 힘을 쏟은 이번 개각의 특징은 보복성과 중후감이다.자민당 소속이면서 모리 총리를 흔들어대는 반란을 일으켰던 가토(加藤紘一) 전 간사장 파벌 의원들 입각이 배척돼 보복인사라는 평을 받는다. 철저한 파벌정치에서 유력파벌이 배제된 인사는 전례가 없었다.
■총리 출신이 둘이나 각료로 참여한 내각도 전에 없던 일이다. 80세를 넘긴 미야자와(宮澤喜一) 전 총리가 재무성으로 개편되는 대장성 장관에 유임되고, 하시모토(橋本龍太郞) 전총리가 행정개혁ㆍ오키나와ㆍ 북방영토 문제를 전담하는 특명장관에 임명됐다.
흘러간 물이 돌리는 물레방아라는 비판도 있지만, 외형상 무게가 중후해진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나카소네(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권유라니 전직총리 세상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미야자와 재무장관은 고 오부치(小淵惠三) 총리의 간청을 받고 쾌히 평장관으로 돌아왔었다.
경제기획청 장관 세번, 대장성 장관 두번, 통산 외무 관방장관을 각각 한번씩 지낸 그는 열일곱 살 연하인 오부치 총리가 삼고초려의 예를 갖추겠다고 하자 휴양지에서 돌아와 정중히 장관직을 수락해 일본국민을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사심 없이 일한 그는 개각을 앞두고 간곡하게 사의를 표했으나, 유임되자 아무 말 없이 받아 들였다.
■하시모토 장관은 모리 총리와 동갑(63세)이고, 총리 출신대학(와세다)의 라이벌인 게이오 대학 출신이다. 어느 모로 보나 정치후배의 요청을 수락할 '군번'이 아니지만, 행정개혁을 마무리해 달라는 주문을 물리치지 못했다.
일본 정가에는 그가 불명예 제대한 총리직에 미련이 있어 일선으로 돌아왔다는 쑥덕거림도 있다지만,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 정치풍토가 신선해 보인다. 전근대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는 일본정치가 그런대로 굴러가는 비결인가.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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