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은 아집과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파멸시켰다. 그러나 바리공주는 부모를 살려내기 위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생명수를 찾는다.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주인공과 우리 서사무가 속의 갸륵한 누이가 한 무대에서 만나, 종말과 재생의 드라마를 펼쳐낸다.
창단 50주년을 맞은 국립극장이 반백년의 세월을 깔고 띄워 올리는 연극 '우루왕'은 동서문화가 만나 마침내 상생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장엄한 서사다.
국립극단 배우 24명, 국립창극단 32명, 국립무용단 34명, 국립관현악단 13명 등 모두 103명의 출연진이 꾸미는 큰 무대다. 여성성만이 세계를 구원할 것이라는 괴테의 명제가 21세기 한국의 예술적 상상력에 힘입어 총체연극으로 현현한 것이다.]
자신의 불길한 미래를 예언한 바리공주를 내쫓은 우루왕은 남은 두 딸에게 박대를 받아 미치고 만다. 바리공주는 갖은 고초끝에 신비의 천지수를 얻어 아버지 우루에게 먹인다.
미망에서 깨어난 우루는 그러나 간신들의 칼을 맞아 죽는다. 김명곤 국립극장 극장장이 축적해 온 20년 광대 세월의 저력은 그러나 리어, 즉 우루왕을 비극적 세계에서 건져낸다.
김극장장의 대본에,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안숙선이 엮어낸 창, 국립무용단 음악감독 원일의 장려한 음악, 국립무용단 담장 배정혜가 짜낸 춤사위의 힘으로 우루왕은 세상으로 귀환한다.
악가무가 어우러지는 무대로서의 장대함이 펼쳐지는 대목이 대미를 장식한다. 바리가 부상한 몸을 이끌고 아버지의 원혼을 위해 펼치는 해원과 상생의 큰 굿판은 한국적 총체극(total theatre)의 정화다. 판소리, 굿, 춤, 전통무예가 타악그룹 공명, 국립국악관현악단, 첼로 합주단 등이 함께 어우러내는 동서양 합성 음악에 펼쳐져 신지평을 연다.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를 만들어내겠다는 국립극장의 야심이 비로소 제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답게,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 아비뇽 축제 사무총장 모니크 쿠탕스, 프랑스의 대표적 공연예술잡지 텔레라마의 편집장 파비엔느 파스코, 일본의 국제교류기금 예술교류부 부장 노로 마사히코(野呂昌彦), 일본 아시아 아트 페스티벌 총감독 기리타니 나츠코(桐谷夏子) 등 문화계 인사들이 이번 내한 공연중 관람을 약속했다. 자국 초청을 위한 사전 행보여서, 극장측에 힘을 더해준다.
'국민연극'이라는, 이제는 진부해지기까지 한 수사를 이 작품에서 국립극장이 명예를 걸고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우루'란 이름은 '리어'와 우리말 '우뢰'을 합성, 부드러운 이미지로 바꾼 것이다. 김명곤 국립극장장의 신조어다. 우루왕에 김성기, 바리공주에 이선희ㆍ박애리, 길대부인에 안숙선, 고흘승지에 장민호 등 출연. 14~1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목 오후 7시, 금~일 오후 3시 7시. (02)2274-1172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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