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이후 일본에서 사실상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알베르토 후지모리(62) 전 페루 대통령이 일국의 최고 지도자였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책임한 발언을 연발, 페루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후지모리는 1일 도쿄(東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페루 검찰이 (내 부패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에 온다면 증언할 수도 있지만, 페루로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이중국적 문제와 관련, "과거 각료 중 한명은 이스라엘 국적을 갖고 있었다"면서 "페루에서는 이중국적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후지모리는 또 타임과의 회견에서는 "페루 첫 일본계 대통령인 내가 회고록을 쓰면 50만부는 거뜬히 팔릴 것"이라며 "10% 정도의 인세를 받아 생활비에 보태쓰고 일본 정부에 세금도 내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는 "어릴 때 잠시 배운 일본어를 이제 열심히 공부하겠다"면서 "일본 TV가 과거 리마주재 일본대사관 인질사건을 다시 다룬다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후지모리가 일본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궁리를 하는 동안 페루에 남은 그의 가족들은 말 못할 고통으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해임 직후 대통령궁을 떠난 딸 게이코 소피아(25)는 "심신이 괴롭다"면서 "그러나 나는 페루에 남아있을 것"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페루에 살고 있는 다른 일본인들도 후지모리가 자꾸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외신들은 전했다.
페루 의회와 검찰은 그가 귀국하지 않을 경우 방일 조사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후지모리는 10년 독재를 통해 모은 재산을 일본의 은행 등으로 빼돌리고, 1990년 선거때 마약 밀매자금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야당지도자 알레한드로 톨레도는 "후지모리가 외유 중에 뒷문으로 달아날 정도로 후안무치한 인물인 줄은 몰랐다"면서 "반드시 죄과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일본 국적 보유를 이유로 후지모리의 장기 체류를 허용할 경우 페루와의 외교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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