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수학능력시험을 수성사인펜으로만 치르게 해서 수험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답을 한 개만 틀리게 써도 답안지를 통째로 고치느라 시간이 많이 들고 학생들이 사소한데 신경을 쓰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외국에서는 OMR카드를 쓸 때도 연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유독 수성사인펜을 강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또 논술시험도 연필을 쓰지 못하게 하는 대학이 많은데 바뀔 수 없나. /김소영ㆍ교사ㆍ서울 송파구 문정동 훼밀리아파트
연필이 아니어서 생기는 문제
올해 수능시험을 치른 이경진(18)양은 수성사인펜 때문에 문제 2개를 포기했다.
이양은 "3교시 수리영역에서 2문제를 잘못 썼지만 고칠 수도 없고 답안지 교체시간도 지나 그냥 냈다"며 "수능 평균점수가 대폭 상승했다니 놓친 2문제가 더 커보여 무척 속상하다"고 말했다.
이양처럼 틀리게 쓴 답을 내는 경우는 아니더라도 실수할까봐 긴장하고 한 문제만 잘못 써도 답안지를 아예 새로 써느라 쓸모없이 소모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수험생 누구나 겪는 문제. 시험종료 10분을 남기고는 답안지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수성사인펜만 구입에 국가예산도 들어간다. 수능시험용 수성사인펜은 각 시도 교육청이 구입해 수험생들에게 나눠준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에 따르면 매년 수성사인펜 구입예산은 수험생 1인당 100원씩 계산한 금액의 1.2배이다. 87만2,297명이 응시한 올해의 경우 전국적으로 1억원 넘는 돈이 예산으로 잡혔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제작업체가 홍보효과를 겨냥해 올해 29만400개의 사인펜을 1원에 낙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논술시험에서도 대부분의 대학이 연필과 수정액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연필을 비롯한 모든 필기구를 허용하는 연세대 서강대 등을 제외한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대부분의 대학은 연필 사용시 채점 공정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청ㆍ흑색 볼펜, 사인펜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선 고교에서는 답안지에 연필로 쓴 뒤 볼펜으로 덧입히는 편법을 가르치고 있다. 교사들은 "작가들도 여러 번 퇴고하는 것이 상식인데 수험생들에게 수정하기 힘든 볼펜만을 사용하라는 것은 지나친 행정편의주의"라고 입을 모았다.
왜 연필로 못쓰나
수능시험 채점을 맡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전산부 관계자는 "OMR판독기가 연필 표기를 읽을 수 있으나 연필 가루, 지우개 찌꺼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답안지 수송과정에서의 부정 등 채점의 공정성이 우려돼 연필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평가원이 보유하고 있는 17대의 OMR판독기는 일본 세코닉사가 제조한 SR9000, SR9100, SR9900 세 기종.
OMR판독기는 파장이 짧은 근적외선 센서를 활용해서 일정 농도에 이르면 판독을 하는 원리로 되어있는데 농도가 아주 옅은 설계용 연필을 제외하면 어떤 연필도 판독을 할 수 있다.
세코닉사에 따르면 판독률은 연필과 수성사인펜이 차이가 없고 세 기종 모두 연필 가루 때문에 고장날 가능성은 없다는 것. 일본에서는 대입시험 등 각종 시험과 복권용 OMR카드도 연필로 작성한다. 미국 대입시험인 SATⅠ의 OMR카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안은
서울 동성고 영어교사 김행수(27)씨는 "학생들에게 사인펜과 연필 중 어느 것을 사용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니 한 명도 사인펜을 선호하지 않았다"며 "수학능력시험과 논술고사의 필기구는 당연히 연필로 바꾸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특히 "답안지 수송과정에서의 부정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관계자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채점과정에 대한 불신이며 이런 인식만 개선된다면 연필 채점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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