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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술문화 달라져야 性문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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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술문화 달라져야 性문화 달라진다

입력
2000.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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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눈길을 끄는 기사 두 건이 보도됐다. 하나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성범죄 비율이 일본의 3배가 넘는다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이며 또 하나는.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에서 46개 부처청에 연말 송년회 지침을 내려보내고 정부 국실장급 간부들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기사다.새 천년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 올해 말미에 접하는 이런 기사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성문화가 새 천년에도 달라지기는커녕 악화일로에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 각계 각 층 지도층 인사들의 잇따른 성희롱, 성추행 사건, 외무장관의 성희롱 발언 파문, 회사원, 교사, 경찰 고위직까지 연루된 청소년매춘, 군산에서 매춘을 강요당하던 20대 여성 5명의 화재참사,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무수한 성관련 사건들이 발생하여 개탄과 분노로 점철된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청소년의 성범죄 발생율 역시 일본의 3배가 넘는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사회 성문화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총체적 부패 상태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성폭력 가해자의 20%가 청소년이고 재범률은 40%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오랜 병폐인, 여성을 비하하고 성적인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성차별적인 남성중심적 성문화가 청소년들의 성인식과 성행태에 그대로 답습,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있는데도 우리사회는 성희롱,성폭력 문제에 대해 관대하기 짝이 없다.

나쁜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실수한 것이라거나 술이 과하다 보니 좀 과장되게 행동이나, 말이 나간 것이라고 변호한다. 심지어는 여자가 조신하게 행동했으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났을 것이라며 도리어 피해여성을 탓하고 의혹과 비난의 눈초리를 보낸다.

청소년 성범죄와 청소년 임신, 낙태의 문제는 철없고 무분별한 청소년의 문란한 성문화탓으로 돌려버린다. 마치 청소년들만의 독자적 성문화가 따로 존재하고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인 양 매도한다.

그러나 올 한해 일어났던 숱한 성관련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성인 남성들의 성행태가 청소년의 성범죄, 성문제보다 더 심각한 양상이다. 그리고 여성을 성적 도구로 성적 노리개 정도로 바라보는 이러한 성문화와 성행태는 남성들의 술문화, 접대문화를 통해 지속, 강화되고 있다.

150여만개에 이르는 향락서비스 산업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늘어나고 접대 여성이 없는 술집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이다. 로비문화에 의존하는 기형적 사업 형태로, 비공식적 접대 문화가 성행한다 이러한 사회 제반 구조 안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노리개로 삼는 남성들의 성행태는 술집에서 거리낌없이 향유되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남성다움의 표출로 용인된다.

이러한 술자리 문화에 젖어있는 남성들이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인식하기는 어렵다. 또한 일방적, 남성주도적 성행태를 보편적 문화로 간주하게 하고 더 나아가 친밀감의 표현과 성희롱, 성폭력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성희롱과 성추행을 짖궂은 농담, 심지어는 분위기를 돋구는 행위를 한 것으로 오인, 자랑스러워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바로 이러한 술문화, 남성문화가 술집 이외의 장소에서도 지배적 성문화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성평등적 성문화가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러한 술문화를 뿌리뽑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사회는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정도의 성문란과 성범죄에 직면하게 되고 이에 대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될지 모른다. 연말 연시를 앞두고 이루어질 많은 회식, 모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술문화를 만들어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최영애ㆍ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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