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본토 최북단의 아오모리(淸森)현 로카쇼(六ケ所)촌. 인구 1만 2,000명, 목축과 어업이 생계수단인 고즈넉한 이 시골 마을이 없다면 일본은 51기의 원전을 정지해야 한다.740만㎡(국내 폐기물 처분장 부지는 60만평 예정)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핵주기(核週期)시설'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원전 연료를 만드는 우라늄 농축시설과 폐기물 처분장이 운영되고 재처리 공장은 건설중이다.
로카쇼촌은 단순한 폐기물 처분장이라기보다 원자력발전의 의지를 담은 거대한 산업시설이었다. 지난달 27일 이 곳을 찾았다.
■우라늄 농축시설
"카메라나 휴대폰은 갖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담배도 금속탐지기에 걸리니 꺼내놓으십시오." 시설 운영자인 일본원연(原燃)주식회사의 아카사카 타케시(赤坂猛) 입지ㆍ광고 부장이 우라늄 농축시설 입구에서 갑자기 부산해졌다.
기자의 이름이 적힌 명패와 나란히 준비된 출입카드를 문 옆에 넣고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이중 문 한쪽이 열렸다. 아카사카 부장은 "건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설계했다"며 비상구로 안내했다.
골목골목을 지나 나타난 창은 뿌옇기만 하다. 스위치를 켜자 창 너머 원통 수백개가 드러났다. 원심분리기가 들어있는 통이다. 원심분리기 자체는 어떤 크기로, 몇 개가 설치됐는지 알 수 없다. 회전속도도, 365일 24시간 무정지 시스템을 유지하는 이유도 모두 '기밀'이었다.
우라늄 농축이란 천연상태에서 고작 0.7%가 함유된 우라늄235(나머지는 이보다 중성자가 많은 우라늄238)를 원심분리기에서 걸러 3~5%로 농도를 높이는 것. 핵분열하는 우라늄235가 많아야 원전 연료로 쓸 수 있다.
이 공장은 일본 내 원전이 소모하는 연료의 4분의 1을 공급한다. 아카사카 부장은 "농축기술은 핵폭발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해외 기술이전이 절대 안 된다. 이 시설은 모두 일본이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농축된 우라늄을 수입한다.
■고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버스를 타고 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으로 이동했다. 흙더미뿐이다. 폐기물을 콘크리트와 섞어담은 드럼통을 5,000개씩 콘크리트 박스 속에 차곡차곡 넣고 빈틈을 다시 시멘트로 채운 뒤, 다공성 콘크리트, 철근 콘크리트, 점토질 흙으로 둘러싸 다시 4㎙ 흙을 덮는 것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의 바닥 지점은 지하 12㎙. 얕게 파고 묻었다 해서 천층(淺層)처분이다. 저준위 폐기물이란 원전에서 쓴 작업복, 장갑, 씻은 물 등으로 300년만 안전하게 관리하면 된다. 처분장의 최대용량은 300만 드럼.
발생량 100년치를 소화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는 더욱 조심스럽고 출입이 제한적이다. 다 쓴 연료를 재(再)처리했을 때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은 방사선량이 치명적이고 2만년이 걸려야 안전한 수준으로 떨어진다. 여러 겹 문을 거쳐 저장시설에 들어서자 바닥에 맨홀 뚜껑만한 노란 원이 보였다.
그 아래에 프랑스 등에서 연료를 재처리한 후 함께 되돌려 받은 고준위 폐기물이 들어있다. 폐기물을 지구에서 가장 안정적인 유리와 결합시켜 두께 5㎜의 스테인리스통에 담아 16㎙ 깊이의 구멍에 9개씩 세워놓았다. "
뚜껑을 열어볼까요?"라는 아카사카 부장의 너스레에 모두 질겁하자 "사람 손으론 절대 열리지 않도록 돼 있다"며 웃는다. 모든 게 자동 크레인으로 옮겨지고 차폐된다. 2㎙ 두께의 콘크리트를 사이에 두고 고준위 폐기물 위에 선 기자의 선량계는 여전히 0.0밀리시버트(mSv)였다.
스테인리스통의 표면 온도는 280도. 0도의 찬공기가 통 주위를 거쳐 나오면 20도로 데워진다. 30~50년쯤 지나 통 온도가 100도로 떨어지면 이를 영구처분장으로 옮겨야 한다. 영구처분 부지나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재처리 시설
처분장 옆에는 100개의 크레인이 어지럽게 오가며 공사 중이다.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 지구위치측정(GPS)시스템을 부착했다. 프랑스의 기술지원을 받은 재처리공장이다.
전체 핵주기 시설의 절반, 공사비는 2조엔(20조원)이나 된다. 사용한 연료봉을 잘라 질산에 넣으면 핵반응하지 않은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녹는데 이를 분리 추출해 다시 연료로 쓴다.
재처리 시설이 시운전을 거쳐 2005년 가동하면 일본은 자국 내에서 원전연료의 생산부터 발전, 사용후연료 재처리, 폐기까지 핵주기를 완성하게 된다.
■부지선정은 어떻게
로카쇼는 암반이 안정적이고 5,000톤 규모의 접안 시설을 갖춘 무츠오가와라 항구가 가깝다는 점 등 핵주기 시설로서 조건이 적합했다. 게다가 1971년 석유공업기지로 개발하기 위한 넓은 부지가 확보돼 있는 상태였다.
공업단지 입주가 부진하자 1985년 일본원연㈜이 로카쇼촌 유치를 본격 추진했다.
당시 로카쇼촌 주민들은 시설대책협의회를 설치해 37개 항목의 요구조건을 협상했고 지금도 추진 중이다.
건설 전 일본원연은 암석의 밀도ㆍ강도 샘플 조사, 음파와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해저암반의 지질 조사, 시추, 갱도 조사 등을 거쳐 암반이 단단하고 균열이 없는지를 조사했다.
또 1.2㎙ 두께의 철근 시멘트 벽은 항공기 추락 사고에도 끄덕없는지 실험을 거쳤다.
재처리 공장의 핵심 건물은 일반 건물보다 지진에 3배 강하도록 설계됐다. 시설 주위의 방사선수치 감시 센터는 사업자와 지자체가 9곳에서 24시간 운영하며 해양ㆍ토양샘플 조사는 매달 실시해 공개한다.
우리나라 역시 활성단층이나 석회암이 없는 단단한 암반을 갖춘 임해 지역을 대상으로 유치공모중이다. 일반적으로 국립공원, 상수원보호구역, 문화재보호구역 등은 제외대상이다.
지자체에서 유치 신청을 했다 하더라도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1995년 정부는 주민의 반대를 의식해 거주자가 극히 적은 굴업도를 후보지로 꼽았다가 활성단층이 확인돼 백지화한 적이 있다. 일본 프랑스 등 외국도 조건에 맞는 후보지를 먼저 조사 선정한 후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부지를 선정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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