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의혹 사건을 숱하게 경험한 전문가들에겐 '감'(感)이란 게 있다.사건개요만 보면 정치사회적 파장이 어디에 이를 것인가를 가늠하는 능력이
다. 이런 경험적 직관에 어긋나지 않는 일 처리로 국민과 정부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유능하고 사려 깊은 공직자다. 오로지 원칙을 좇는 공직자는 아예 기대하지 않더라도, 이런 정도 판단력을 지닌 공직자조차 없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좁은 안목으로 폐쇄적 권력집단의 안위를 지키려는 무리만 있으니, 국민과 정부가 모두 편치 않은 것이다.
벤처 금융사기 '진승현 게이트'는 이런 개탄스런 상황을 압축해 보여준다. 뻔해 보이는 의혹사건이 일찌감치 불거졌는 데도, 누구 하나 제대로 감 잡고 사태를 수습하는 것 같지 않다.
대통령이 공직비리와 마지막 결전을 다짐한 것과는 딴판으로, 모든 사정기관과 권력보좌 조직이 저마다 이런저런 눈치만 살피며 어물쩍 어물쩍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기관 간부의 진승현 구명로비 의혹이 불거진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결코 덮어지지 않을 의혹을 무리하게 덮으려 들면, 엉뚱한 데서 탈 나는 법이다. 경험과 상식을 무시하면, 국정 혼란을 가중시키게 된다.
가뜩이나 진씨가 벌인 사기극의 배후에 감독기관의 유착과 비호가 있었으리란 의혹이 많은 판국에 구명로비 의혹마저 나오는 상황은 심각하다. 의혹을 받은 공직자들의 해명도 쉽게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고위 공직자가 이 정도 민감한 사건과 관련해 단지 분별없는 처신을 했다고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것이다. 물정 모르는 국민도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구차한 해명으로 가릴 수 없는 의혹의 단서는 다른 곳에서도 드러났다.
권력기관 출신이 진씨 건이 터진 시점에 진씨 회사의 회장으로 영입된 사실은 또 뭘 말하는가. 이 사람은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을 내세워 검찰 상대 로비를 맡은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이미 금감원을 비롯해 여러 사정기관이 석연찮은 조치와 대응을 한 흔적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야당은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의혹을 씻으려면, 권력을 빙자해 사기극을 돕거나 구명활동을 한 세력을 철저히 밝혀내 다스리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진짜 권력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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