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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산상봉 / 서울에서 - "절 받으세요" "안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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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이산상봉 / 서울에서 - "절 받으세요" "안아보자"

입력
2000.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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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6층 이산가족 상봉장은 이산의 한(恨)과 재회의 기쁨이 어우러져 거대한 눈물바다로 변했다.북측 방문단이 예정보다 4시간이나 늦은 오후 8시30분께 상봉장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남측의 가족은 뛰쳐나가 어머니, 아들, 누이, 아우의 이름을 부르며 감격의 눈물과 통곡을 터뜨렸다.

그러나 행사장 곳곳에서는 간간이 웃음과 박수가 흘러나오기도 했고, 노래를 부르는 가족들도 있어 1차 상봉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

○."너를 보려고 지금껏 살았어."

남쪽의 어머니 박간례(90)씨는 50년간 죽은 줄만 알았던 큰아들 홍세완(69)씨를 만나자 마자 펑펑 눈물을 쏟았다.

세완씨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저를 참 귀여워해주셨는데..."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아들의 말을 이심전심으로 알아듣고 끄덕이며 등을 어루만졌다. 박 할머니는 "사람들이 네가 폭격으로 죽었다고 해서 그런줄 알았어"라며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아들은 "건강하세요. 통일이 되면 꼭 모시러 오겠어요"라며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다.

○."아버지, 절 받으세요."

아버지 신용대(愼鏞大ㆍ81)씨를 만나러 미국 로스앤젤레스로부터 귀국한 문재(文宰ㆍ50)씨는 아버지를 대번에 알아보고 절부터 올렸다.

아버지도 아들을 일으켜 세우고 벗겨진 머리를 어루만지며 "너도 나처럼 고생을 많이 했구나"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는 문재씨가 생후 2개월 때 전쟁의 혼란과 함께 가족을 떠났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다 돌아가신 후 나도 이 땅을 떠났죠."

흐느끼는 아들을 아버지는 "네 어머니를 무척이나 사랑했지. 그 사랑의 인연으로 너를 다시 만나는구나"라며 끌어안았다.

○."누님 많이 늙으셨구려."

평양 직물도매소 지배인 홍응표(64)씨는 누이 양순(69ㆍ경기 성남시 수성구)씨를 만나자 마자 몸을 떨었다.

누이는 "혈육이라고는 너하고 나 둘 뿐인데 이게 무슨 비극이냐"며 흐느꼈다. 경기 고양군이 고향인 홍씨는 한국전쟁중이던 14살때 부모를 잃은 뒤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수훈'을 받기도 했다.

○. 상봉장에서 북의 아버지 황영규(76)씨를 기다리던 딸 성애(54)씨는 어머니 성금분(75)씨의 모습을 보고는 "어머니, 오셨군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가 "시누이에게 딸을 맡기고 재가한 내가 무슨 낯으로 네 아버지를 보겠느냐"면서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워 주변을 안타깝게 해왔기 때문이다.

모녀는 이날 성애씨의 둘째고모 영철(66), 막내고모 영금(61)씨, 성애씨의 아들 오경석(34)씨와 함께 황씨를 50년만에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즉석에서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있었다. 남쪽의 누나 김영태(73)씨를 상봉한 형태(71)시는 즉석에서 어머님 영정사진과 과일, 당근주스 등을 놓고 눈물을 쏟으며 50년 만의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눈물 대신 웃음과 얘기 꽃을 피우는 가족도 있었다. 어머니 심부름을 갔다 의용군에 징집된 정재갑(66)씨는 취재진에게 "이렇게 기쁜날 왜 웁니까"라며 어머니 안준옥(88)씨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달라진 北방문단 모습

30일 서울에 온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은 8ㆍ15 상봉 때보다 훨씬 여유 있는 모습으로 서울의 밤을 즐기는 듯했다.

특히 이날 오후 10시30분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 5층 메이플룸에서 열린 환영만찬은 식사와 춤이 어우러진 잔치마당이 됐다.

북한 적십자회 관계자가 식사 도중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반갑습니다' 노래를 부르다 박자가 빨라지자 테이블 곳곳에서 북한 할머니들이 어깨춤을 추었다.

이어 '우리의 소원' 노래가 이어졌으며 일부 신이 난 방문단과 남측 관계자들이 연단에 올라 어깨동무를 한 후 몸을 흔들며 즉석 합창무대를 펼쳤다.

1차 상봉때는 없던 모습이었다. 반주로 내놓은 포도주와 문배주는 모두 깨끗하게 비워졌고, 가족들은 모두 불콰해진 얼굴로 만찬을 즐겼다.

옷차림도 대부분 비슷했지만 훨씬 더 멋을 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여성 상봉단원들도 모두 반코트를 걸쳤고 속에는 검은색 바탕에 화려한 원색 꽃무늬의 우단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표정도 한결 부드러웠다.

숙소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는 우리측 안내원에게 스스럼없이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집단상봉장에서 가족들과 대화하는 동안 '김정일 장군님'을 언급하는 횟수도 훨씬 줄어들었고, 고향 얘기와 안부로 화제를 이어갔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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