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외인군단은 금융선진화의 기수인가, 개혁 모양새를 위한 들러리인가.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국내 은행들이 선진금융기법을 도입한다는 명분 아래 억대의 연봉을 내걸고 외국인 금융 전문가를 모셔왔으나 성적으로 쉽게 평가할 수 있는 프로야구 용병들과 달리 외국 금융인들의 공과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 국내 은행에서 임원급으로 활동하는 외국인만 10여명. 외국 금융기관에 오랫동안 종사해 외국인에 준하는 연봉 대우를 받는 한국인까지 합치면 20여명에 이르고 있다.
▲ 대출 외압 '방패'?
지난달 말 A은행 회의실. 외국인 부행장을 포함한 7명의 여신위원회 위원들이 K건설에 대한 100억원 대출 문제로 격론을 펼쳤다.
"이 회사는 신규 자금이 없으면 극심한 경영난에 처할 수 밖에 없다. 분양이 잘 될 것으로 보여 대출금은 2개월 내에 회수될 것이다."(여신담당 상무) "분양은 잘 안될 수도 있다. 이 회사 재무구조를 보면 기존 대출금도 회수해야 할 판이다. 신규 대출은 절대 안된다."(리스크관리담당 외국인 부행장)
2시간 여에 걸친 난상토의 끝에 위원회는 '50억원 대출' 로 결론지었다.
외국인 임원들이 늘어나면서 각 은행에서 이 같은 상황이 빈번하게 펼쳐지고 있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은행에서 파견된 만프레드 드로스트(60) 부행장은 지난해 초 대우그룹에 대한 여신 1조원을 회수토록 했다. 그러나 정부가 각 은행에 "대우로부터 회수한 여신은 모두 다시 돌려줄 것"을 강요했다.
드로스트부행장은 정부 강요에 마지못해 따르면서 "도대체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며 측근들에게 분통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올 7월 초 서울은행에 영입된 데이비드 워너(53) 수석부행장은 국제금융 및 자금 담당. 최근 4,200억원 상당의 부실채권을 론스타사 등 해외에 매각하는데 성공하고,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 추진을 주도하고 있다.
한빛은행 재무기획본부 부본부장(CFE)으로 영입돼 경영관리 및 재무회계관리와 투자설명회(IR) 등을 담당하고 있는 존 보첼로(52)씨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보첼로 부본부장은 "전 직장에서 주 50시간씩 일하다 최근 주 60시간씩 일하는 상태"라며 "그동안 국내 은행들은 수익성보다 외형 불리기에 치중해왔는데 앞으로 고수익 분야에 집중하도록 체계적인 전략을 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은 이들 외국인을 핑계로 꺼림칙한 대출 외압을 사절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외국인 뱅커는 제일은행의 윌프레드 호리에 행장이다. 올 1월 취임 후 지방 구석 구석을 돌며 어수선했던 내부 조직을 추스리고 '금융 슈퍼마켓화' '고객 풀 서비스체제' 기치 아래 고수익은행 건설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다른 은행들에 비해 예금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등 가시적 효과는 기대에 못미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부정적 평가도 상존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찮다. 제일은행의 경우 '채권전용펀드'조성 등 금융시장 공멸을 막기 위한 공동 사업에는 빠지는 등 전체 시장보다는 개별 은행의 이익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기대했던 선진 금융기법이라는 것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데다 국내 금융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은 부분도 많다는 주장도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장점은 단지 철저한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한 리스크 관리와 외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우방 동아건설 등 대기업 퇴출문제에 대해서는 외국인들도 만일의 경우 초래될 파괴력 때문에 '원칙'을 강도 높게 주장하지 못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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