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의회(크네셋)가 28일 조기 총선안을 의결하고 에후드 바라크 총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향후 이스라엘 정국은 물론이고 중동평화협상이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됐다. 총선시기와 관련, 바라크는 늦어도 9개월 내에 실시하겠다고 밝혔고 야당은 내년 5월께 실시될 것으로 예상했다.지난 9월말 중동 유혈사태 발발 후 줄곧 거국연립정부 구성을 모색해온 바라크가 이날 전격적으로 야당의 조기 총선안을 받아들인 것은 '피하기 힘든' 정치적 결단이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지난 7월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상에 실패하면서 위기를 맞기 시작한 그는 9월 28일 아리엘 샤론 리쿠드당 당수의 알 아크사 사원 방문을 계기로 돌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사태로 평화 협상은 커녕 이를 수습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봉기)'로 궁지에 몰린 바라크는 샤스당의 시한부 지지로 간신히 불신임 위기를 모면했으나 이마저 상실하자 무릎을 꿇었다.
현재 상황에서 조기 총선이 실시될 경우 바라크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게 확실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그의 지지도는 벤야민 네탄야후 전 총리는 물론 샤론 리쿠드당 당수에도 크게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5월 총선에서 '용감한 자의 평화'라는 구호 아래 중동평화를 약속한 바라크에게 몰표를 던졌던 이스라엘 국민은 그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선택이 곧 몰락으로 귀결된다고 보긴 곤란하다.
바라크는 앞으로 총선까지 남은 6개월 동안 정치생명을 걸고 2년 전 초심(初心)을 입증하기 위해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과 캠프 데이비드 후속 협상을 전개, 총선을 평화협상안에 대한 국민투표 형식으로 치러 승리하겠다는 계산이다.
바라크가 그토록 갈구했던 리쿠드당과의 극우연정 구성을 포기하고 이들과 적이 된 것은, 완전히 반대 방향인 평화협상을 통해 정치적 돌파구를 열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팔레스타인측도 은근히 바라크와의 마지막 협상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협상대표는 "바라크에겐 6개월의 시간이 있다"며 "그가 원한다면 침략을 중단하고 평화를 진전시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수진을 친 바라크로서는 야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으로 마지막 협상 기회를 가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라크가 뜻대로 유혈분쟁을 끝내고 평화협상을 타결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분쟁의 시발점이기도 한 동예루살렘 문제를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타결하긴 쉽지 않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가 이 기회마저 살리지 못할 경우 평화협상에 소극적인 정부가 이스라엘의 정권을 차지하고 중동은 전쟁의 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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