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돈으로 무엇을 얼마나 살 수 있을까. 탈북자들 증언에 따르면 북한 주민 평균임금이 100원 정도인데 300~350곳의 북한 장마당(농민시장)에서 세수비누 1장 거래 가격은 92원에 달한다. 따라서 '월급으로 비누 한장 밖에 사지 못한다니.'라는 의구심을 갖게 마련이다.이 의구심은 북한 경제의 이중구조를 들여다 보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북한에는 국영상점과 배급소를 통해 '국정가격'으로 유통되는 공식 유통경로와 장마당(농민시장)의 수요ㆍ공급으로 결정되는 '시장가격'을 통한 비공식 유통경로가 존재한다.
국정가격과 농민시장의 극단적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는 쌀. 지난해 쌀 1㎏은 국영상점이나 배급소에서 살 경우 8전(국정가격)이지만 농민시장에서는 800배 수준인 64원에 거래됐다.
이중 가격구조는 생필품의 공급 부족에서 기인한다. 배급소와 국영상점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이 충분하다면 국정가격 구조가 유지되겠지만 물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비싼 돈을 주면서 농민시장의 물건을 사야 한다.
하지만 북한 전체 주민들이 농민시장의 고물가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다. 생활에 필요한 쌀과 잡곡, 된장과 간장, 비누 등은 부족하나마 배급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당간부, 국가 고위관리, 평양 시민 등의 경우 충분한 배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후 순위'로 밀려 필요량의 30~40%의 주식과 된장 등 일부 품목 밖에 배급받지 못하는 일반 주민들은 주곡의 60%, 생필품의 70%정도를 농민시장에서 구매한다.
농민시장으로 유입되는 물품은 농민들이 텃밭(30평 내외)에서 가꾼 채소 등 사적 생산물, 공식 유통경로에서 유출된 물건, 중국 등 제3국에서 유입된 상품들이다. 공식 유통경로의 물건들이 농민시장으로 흘러드는 것은 약간의 물건을 빼돌리더라도 막대한 돈을 만질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다. 탈북자 여금주(27ㆍ여)씨는 "1달치 월급인 북한 돈 100원은 체감적으로 남쪽의 100만원 정도"라며 "하지만 남쪽에서는 그 돈이면 TV를 거뜬히 살 수 있지만 농민시장에서는 블라우스 한 벌도 못 산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달러를 통해 북한 화폐의 구매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까. 이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공식적으로 1달러는 북한 돈 2원15전으로 환전 된다. 즉 100원은 46달러 50센트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것일 뿐 달러를 소지한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암달러상의 가격은 공식 환율의 10배를 넘는다. 즉 100원은 4~5달러에 불과하며 우리 개념으로는 한 끼 식사값에 불과하다.
농민시장의 고물가에 북한 주민들은 부업으로 대처하고 있다. 양강도 혜산에서 살다 1997년 탈북한 K(36ㆍ여)씨는 1년에 두 번 정도 황해도 이모 집으로 가 미역, 전복 등 해산물을 사서 내륙지방에서 파는 방법으로 4만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또 함흥에 살았던 주부 이금옥씨는 집에서 20마리의 닭을 길러 계란(1개당 5원)을 시장에서 팔아 매월 200원의 수입을 올렸다. 군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장교 부인들도 텃밭에서 돼지를 기르며, 심지어 아파트에서 닭이나 돼지를 사육하는 경우도 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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