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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 일] 정소성·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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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 못할 일] 정소성·소설가

입력
2000.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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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에 잡혀간 윤순경 살아서 그 어머니 만나길2차 이산 가족 상봉이 눈 앞에 다가왔다. 또 눈물바다가 될 것이다.

나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당시 여섯살이었다. 아버지는 경북 영천군 화북면 지서 주임으로 계셨다. 화북면은 험하기로 유명한 백두대간 줄기 보현산(1,124㎙) 바로 아래다.

지서에는 토성으로 높은 방어 벽이 지어져 있었다. 토성의 네 귀퉁이에는 기관총이 장착돼 있었다. 지서 안에는 지하 방공호를 파놓아 면 유지와 가족들이 총알을 피할 수 있게 했다.

그해 여름부터 산을 타고 들이닥친 빨치산과의 전투가 시작되는 밤이면 깊은 산 마을에는 일체의 음향이 죽어버리고 오직 콩을 볶는 듯한 각종 화기들의 발사음만이 몸서리쳐지게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아버지는 그날따라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우리 가족과 면장, 소방서장, 교장 선생님, 우체국장의 가족들을 지서 뒷문으로 내보냈다. 그리곤 솟을 대문이 있는 어느 집으로 가게 했다.

언뜻 잠이 들었을까. 한밤중 무시무시한 폭발음에 잠을 깬 나는 지서 쪽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캄캄한 밤 하늘로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그 때 대문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치산들이 담을 넘어 집으로 넘어온 것이다. 조금 있다가 방문을 열라는 이북 말씨가 들려왔다. 그들은 그 넓은 집을 순식간에 뒤져 전투복을 입은 순경 한 사람을 찾아냈다. 나도 알고 있는 윤 순경이었다.

다들 나오라고 해서 우리도 마당에 한 줄로 늘어섰다. 우리는 위기모면을 위해 그들에게 옷가지와 담요 등을 내어주며 수고한다고 인사를 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성분을 알았더라면 무사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때 마침 퇴각하라는 호각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아무 말 않고 포로로 잡은 사람을 앞세우고 골목 길로 황급히 사라졌다.

날이 밝아 지서로 갔더니 폐허가 돼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나는 지난 여름 청량리에서 있었던 영천군 향우회에 갔다가 윤 순경의 아들을 만났다. 그 분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시다는 것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고개를 떨군 채 잡혀가던 윤 순경의 절망적인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당시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있을 지도 모르겠다. 꼭 그분이 살아서 이번 2차 이산가족 상봉 때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소성·소설가ㆍ단국대 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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