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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치문화의 전국 오염

입력
2000.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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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극단의 투쟁문화가 모든 한국인에게 미치는 오염이 심각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회의장이 얼굴을 붉히며 국회의원들과 서로 소리치는 모습이 보도된 날, 주부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나온 말들이다."국회의원들이 싸우는 장면을 TV에서 보여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나이도 지긋한 사람들끼리 소리치고 욕설하며 싸우는 모습이 아이들 교육에 이만저만 해를 끼치는게 아니에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원조교제나 러브호텔이 아이들 교육에 더 해가 클까요? 아니면 정치인들이 우격다짐하는 게 더 나쁠까요?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너무나 나쁜 짓만 배우는 것 같아요."

아무리 정치인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파렴치한 원조교제 등과 비교하면서 더 나쁠 수가 있다고 말한 것은 너무했다. 하지만 국회와 정당들이 벌이는 격한 싸움이 우리 문화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현상황에서 정치는 매우 중요하다. 통일, 경제, 교육, 노동, 환경 등 격변하는 사회 움직임에 대처하는 중심은 국회여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고 진지하게 논의하여 최선의 정책을 수립하는 권한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다.

사회집단간에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치열한 사회문제가 쌓여있는 까닭에 어떤 정책도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의견대립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나 타협을 못하고 파행으로 치닫는 것은 우리 정치인의 고질병폐이다.

타협(妥協)은 굴복이 아니다. 협잡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은 모든 국민을 다 만족시키는 정책 수립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전체를 위해' 획일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고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다만 최선을 다해달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주부들이 보기에도 정치인들은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 것 같지 않다고 한다.

"선거 때는 국민에게 납작 엎드리다가 국회에만 들어가면 왜 표변하지요? 유권자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가 봐요? 떼 싸움이나 다름없이 옥신각신하는 꼴을 보면 정말 창피해요.

아이들과 같이 뉴스를 보기가 낯이 뜨거워요"

이 주부는 더 나아가 토론문화가 발전하지 못하고 협상이 없는 사회에 사는 것도 정치인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모범을 보이는 대로 국민이 배우는 게 아니냐는 말이었다.

노사가 협상하지 못하고 극단의 파업투쟁에 나서고, 의사와 약사가 환자가 어떻게 되거나말거나 결사적으로 싸우고, 농민이 차를 몰아 경찰 저지선을 돌파해서 사람을 치는 지경까지 가는 '투쟁방식'을 어디서 본받았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정치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야 없겠지만 TV뉴스에서 반복하여 보여주는 '국회싸움'이 국민들의 정서에 주는 영향은 막대할 것이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고함을 지르거나 우격다짐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보이게 해서는 안된다. 터무니없는 주장이나 도둑이 몽둥이를 드는 것처럼 뒤집어 씌우는 행위를 태연히 해서도 안된다.

"아이들이 떼를 쓰면 못이기는 척 져줬지요. 앞으론 터무니없는 떼는 절대 들어주면 안돼요.

그렇게 키우면 민주주의사회의 건전한 토론과 타협을 배우지 못하지요."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문화가 언론매체를 통해 널리 퍼진다고 걱정하던 주부들의 말은 자녀교육으로 돌아갔다.

정치문화를 전 국민에게 나쁜 독소를 제공하는 오염원으로 낙인찍으면서도 이를 청소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결국 막막하기는 하나 바른 자녀교육만이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이런 나쁜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최성자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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