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골퍼 김미현김미현(23)은 '국민선수'다. 골프를 잘 치기 때문만이 아니다. 맑고 밝은 표정만큼 처신이 깨끗하다. 역경을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겨냈다.
작은 체구로 큰 덩치의 외국 선수들과 맞붙는 게 안쓰럽지만 거뜬히 물리칠 땐 대리만족을 준다. 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도 김미현의 매력이다.
우리 사회에 '역할 모델'이 필요하다면 김미현이 1순위로 꼽혀야 하지 않을까. '역할 모델'은 곧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미현이 기자를 만나자고 한 곳은 서울 압구정동 언저리의 무슨 카페였다. 카페에서 인터뷰를 한 것도 처음이었지만 카페도 보통 카페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수 십 마리의 개가 손님을 맞았다. 큰 놈, 작은 놈, ‥, 족히 서른 마리는 되었다.
그제서야 'Dog Mania Cafe라고 적혀 있던 간판이 기억 났다. '개에 미친 사람만 오는 카페'였다. 다행히 물거나 으르렁 대는 놈은 없었다.
기자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김미현은 힙합 차림으로, 익히 보던 귀엽고 애교스런 모습이었다.
기자를 포위했던 개들이 일제히 김미현을 둘러쌌다. 김미현은 기자와 인사를 한 후 큰 놈들 가운데 묻혀 있던 슈나우저 한 마리를 들어올렸다. 어른 주먹보다 약간 큰 놈이었다. 김미현은 귀여워 죽겠다는 듯 껴안아 입을 맞추고 쓰다듬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_개를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도 개를 키우는데‥, 그 슈나우저 김 선수 거냐. 이름이 뭐냐.
"슈피다. 내 별명 '슈퍼 땅콩(피너츠)'을 줄인 거다."김미현은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해 미국에도 시추 한 마리, 닥스훈트 한 마리를 키우고 있으며 이 슈나우저가 다섯 번째다.
3주 전에 샀는데 엄마가 안 좋아하셔서 이 카페에 맡겨 놓고 있다"고 말했다.(이 슈나우저 때문에 김미현은 별 일이 없으면 이 카페에서만 시간을 보낸다.)
김미현은 TV 아침 생방송에 나가 생글생글 웃으며 노래도 부르고 장래 희망도 이야기 하면서 한 시간을 보내고 온 길이었다.
_아까 방송을 보니까 나중에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하루 이틀 해온 생각이 아닌 것 같더라?
"어렸을 때 양로원을 몇 번 찾아간 후부터 해온 생각이다. 도와야 할 사람이 많은데 지금부터 계획을 세우면 쉬울 것 같아 누가 장래 희망을 물으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내 생각을 알리다 보면 같이 일할 사람도 모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건 없다."(김미현의 마음씨가 따뜻하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이 번에 귀국하면서도 3,000만원을 떼내 불우한 환자 3명의 수술비로 내놓았으며, 미국에서는 얼마 전 출전했던 한 대회 상금 20만 달러를 모두 자선기금으로 출연했다.
버디를 한 개 할 때마다 후원사인 016 한통프리텔을 통해 1만원씩 모으는 '사랑의 버디 행진'도 시작했다.)
"내게 맞는 지도 필요한데 그런 코치 아직은 없어요"
_골프 이야기도 좀 하자. 김 선수는 스윙이 커서 체력도 많이 소모되고, 그래서 골프 선수로서 수명이 짧을 거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더라.(국내 어떤 재벌이 김선수의 스폰서로 나서려다 이런 이유로 그만 뒀다는 소문도 있다.)
"스윙이 작으면 좋다지만 나는 불편하다. 리듬이 안 맞는다. 그리고 손목이 꺾여 생기는 큰 스윙이 나쁘지, 나처럼 어깨를 크게 돌려서 생기는 큰 스윙은 오버스윙이 아니다."
_코치가 없지 않나. 좋은 코치가 있으면 성적도 더 잘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전에는 돈 때문에 코치를 못 둔다고 했는데 이제는 상금도 코치를 둘 만큼 모으지 않았나.
"코치를 안 둔 건 돈도 돈이지만 아직은 코치가 도움이 안 된다. 한 번은 유명한 코치를 불러보았는데 가르치는 게 타이거 우즈와 데이비드 듀발의 스윙에 내 스윙을 겹쳐 놓은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너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전부였다.
키나 덩치, 팔 길이가 다 다른데 그렇게 배우는 게 무슨 소용이냐. 나도 내 나름대로 12년을 해왔는데‥. 그래서 그만 두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선생이 있으면 배우겠다."
_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나. 골프는 기술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는데?.
"특별한 훈련이 뭐가 있겠나. 성격이 독한 게 마인드 컨트롤이지."(겉으로는 애교가 똑똑 떨어지지만 김미현은 96년엔 맹장염에 걸린 것도 모르고 해열제를 먹고 시합에 나가 우승까지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독하다는 이야기를 한참 하던 김미현은 엉뚱하게도 혼잣말 처럼 "부모와 같이 시합에 다니는 것도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_무슨 소리냐.
"이 나이에 부모님과 24시간 같이 다니면서 잔소리를 계속 듣고 견디는 것도 정신수양에 도움이 된 것 같다는 말이다."(TV에서 김미현이 부모님과 아주 다정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다른 말이었다.)
"귀엽고 착한 남자가 좋아 캐디해줄 남편감 있을까"
_독립 하고 싶다는 거냐, 언제 독립할 거냐.
"시집갈 때가 독립할 때이겠지."(이 말을 할 때 약간의 외로움이 묻어났다. 안고 있던 슈나우저가 손가락을 물자 김미현은 "요 녀석 이를 뽑아버릴거다며 다시 뽀뽀를 했다.)
말이 나온 김에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들을 몰아 물었다.
_언제 시집 가나. 사귀는 남자는 있나. 남자 친구가 골프에 도움이 된다고 보냐, 안 된다고 보냐. 도움이 되면 남편에게 캐디를 시킬 거냐.
"아빠가 원래는 스물 여섯에 가라고 하셨는데 요새는 스물 여덟에 가라고 하신다. 남자 친구가 골프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사귀는 사람이 없어 뭐라 말 못하겠다."(김미현은 "그런데 남편 감이 캐디를 하려나, 캐디를 해줄 만한 남편 감이 있으려나"고 또 혼잣말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_어떤 남자가 좋으냐.
"귀엽고 착하고 이해심이 많으면 된다.""돈은 없어도 된다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조금 심각한 대답이었다. "나는 돈이 있어도 봤고 없어도 봤는데 없으니까 사실 불편하더라.
'없으면 어때'가 아니었다. 돈이 없으면 걱정이 많아지고, 얼굴도 변한다. 주변과 싸움도 많아지고‥. 그런데 돈은 없어도 되지만 노력 안 하는 사람은 싫다."(어릴 땐 꽤 부유하게 살았던 김미현은 부친의 사업실패로 한 동안 큰 고생을 하며 살았다.
프로골퍼로 성공하면서 생활이 풀렸는데 이 때문에 '헝그리 골퍼'라는 말도 붙어 다닌다.)
_지난해에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요즘은 어떤가.
"부모님과 밴을 타고 시합에 다닌 탓에 고생했다고 하는 모양인데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미국선수들도 10시간 정도 거리는 밴으로 이동한다.
하여튼 다 지난 이야기다. 추억거리다."
_골프선수가 안 됐다면 뭘 했을 것 같나.
"골프말곤 해본 게 있어야 말을 하지. 수영과 스키를 가끔 하는데 체격 때문에 선수는 못됐을 것이다. 집 꾸미는 걸 좋아해서 미국에 있는 집을 예쁘게 꾸미고 싶다.
그런데 시간이 안 난다. 한 번 시합을 떠나면 2~3달 만에 돌아오고 그래 보았자 나흘 밖에 못 머무니까 꾸밀 시간이 없다. (김미현은 플로리다 올란도에 방 다섯 칸짜리 집을 샀다. 부모와 함께 골프 투어를 떠나면 유학생인 오빠가 집을 지킨다.)
_영어는 어느 정도냐.
"음식점에서 먹고 싶은 걸 시켜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미국 기자들과 인터뷰는 아직 쉽지 않다. 그래도 요새는 인터뷰 주문이 많이 들어와 앞으로는 더듬거리더라도 응할 생각이다."
"내년 목표는 메이저 우승 연습만이 골프실력 늘려줘"
_영어 못해 텃새도 많이 받았겠다.
"전에는 내가 먼저 인사해도 모른 체하는 미국 선수들이 많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내 실력을 인정해서인지 전과는 다르다. 체격도 작고 영어도 못 하니까 우습게 보다가 내 성적이 좋으니까 달라진 것 같다.
하긴 나보다 덩치 큰 선수들이 같이 시합하다 내가 드라이브 거리가 더 나면 무너지는 것도 많이 보았다.(우습게 보던 미국선수가 누구냐고 물어도 그런 것 까지 어떻게 말하냐고 대답했다.)
_내년 목표는 뭐냐.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그 중 가장 권위있는 US 오픈은 꼭 차지하고 싶다."
_전번에 장정이랑 연장전까지 가서 우승했는데 어떤 기분이 었나.
"꼭 우승할 생각으로 경기를 했는데, 끝나고 장정이 쓸쓸한 모습으로
필드를 떠나는 걸 보곤 내 마음도 안 됐다. 하지만 내가 졌더라면 국내 신문에 '후배에게도 졌느니'하는 기사가 나왔을 것이다."
_참, 올해 박세리가 부진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운동이라는 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다. 선수가 어떻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닐 때가 많다. 나에게도 그럴 때가 올지 모르는데 ‥. 우리 언론이 문제다. 잘 할 때는 한 없이 잘 한다고 하다가 못 하면 언제 그랬느냐 듯 마구 혼을 낸다.
그래서는 안 된다."
_마지막 질문이다. 골프를 잘 치고 싶은 사람에게 한 마디만 해봐라.
"연습 뿐이다. 필드보다 연습장엘 나가라. 나는 아직도 연습할 때는 아침 7시부터 12시간 동안 1500개에서 2000개를 친다. 연습 뿐이다. 시합 때도 시작 전에 한시간 반 연습하고 끝나면 또 한시간 반 연습한다."
●약력
1977 부산출생
1995 부산진여고 졸, 용인대 입학
1996 프로 입문
1999 미국 LPGA데뷔. 2승. 올해의 신인왕 수상
2000 27개 대회 출전해 10위내 입상 13회, 우승 1회
상금 82만5,720달러 획득(7위)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 240.26야드(99년 통계)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 29.66(99년 통계)
정숭호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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