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문화대토론회가 24일 끝났다. 이 날에는 생활문화 문화산업 정보문화등 세 부문별 발표와 총평,환송만찬이 진행됐다.■총평 및 제언
토론회는 동북아시아 문화통합을 향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토론회를 통해 한ㆍ중ㆍ일 3국은 문화적 공통분모를 확인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진지한 협력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문화대토론회는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 한ㆍ중ㆍ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한반도는 전통적으로 강대한 대륙국가인 중국과 해양국가인 일본의 중간에서 양측을 조화ㆍ중화시킴으로써 동북아 균형에 공헌했다.
따라서 3국은 일제침략과 남북분단 등으로 과거 100여년간 상실됐던 한반도의 가교적 역할을 회복하도록 공동노력해야 한다.
강력하고 통일된 한반도는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과 공동번영에 필수적이다.
한ㆍ중ㆍ일 3국은 동북아문화의 매개체이자, 앞으로 영어를 대체하는 인터넷언어가 될 한자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중국의 고전과 상상력 등 문화유산을 공동 발굴한다면 동북아지역 오락산업의 미래는 매우 밝다. 서로의 시스템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융합된 동북아문화는 장차 세계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제공할 것이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각계의 반응
한ㆍ중ㆍ일문제를 정치ㆍ경제 중심으로 다룬 세미나는 많았지만 문화를 다각도로 조명한 국제학술행사는 처음이었다.
가톨릭대 중문과 박종한(朴鍾漢) 교수는 "생활문화 전반에 뿌리를 둔 종교와 문화정신 등을 집중적으로 다룬 토론회는 처음"이라며 "우리 학계에선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배지인(裵知仁ㆍ28)씨는 "문화적 공통점과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3국 간의 경제협력은 단기성에 그칠 것"이라며 "토론회가 중국 일본의 생활문화 이해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중국어교육학과의 김은주(金殷珠ㆍ25)씨도 "광범한 주제를 주어진 시간에 소화하기엔 다소 무리였지만 진지하게 서로 다른 시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인민일보의 조우삐중(周必忠) 전 평양특파원은 "새 천년을 맞아 3개국 생활문화의 뿌리와 특수성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열었다는 게 큰 수확"이라며 "다음엔 북한학자들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 아사노 요시하루(淺野好春) 기자는 "3개국의 경제통합은 격차가 너무 커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토론회를 통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며 "경제격차를 감싸 안는 것은 역시 문화적 동질감"이라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제3주제-생활문화(사회 최정호)
♠부제
외래문화와 전통 생활문화의 조화 가능성
동아시아의 전통 생활문화에 관한 재조명
▼주제발표▼
외래문화수용 日 본보기
▦조흥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문화정체성에 대한 위기는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밀려드는 외래(서양)문화와 동아시아의 전통적 생활문화 사이에서 조화의 가능성을 모색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음양론적 관점에서 문화정체성과 세계화, 외래문화와 전통문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따라서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돼야 한다.
한중일 3국의 의ㆍ식ㆍ주 생활문화는 공통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음식문화의 경우 3국은 모두 쌀문화권에 속해 있지만 중국은 밥과 빵을 혼용하고 일본은 밥을 주식으로 하되 면류를 곁들인다.
유독 밥을 고집하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복식과 주택, 성(性)문화는 물론 전통적인 '연고주의' 문화까지도 이들 3국은 동질성ㆍ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한국문화구조에는 중앙집권적 관료문화의 지배체계와 샤머니즘적 상상계가 강해 지역문화가 취약하고 전통생활문화가 신명과 활력을 잃었다.
외래문화를 수용ㆍ소화하면서 전통 생활문화를 다듬어 상품화하는 일본의 문화구조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모방' 내실없어
▦왕이엔(王炎) 중국 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
한중일 3국은 경제의 발전수준이 서로 다르지만 다른 문화권과 달리 응집력이 비교적 강한 편이다.
같은 한자(漢字)문화권이라는 점 때문이다.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은 100년 이전부터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때로는 훼손되면서 3개국별로 자생적으로 변화해왔다.
그러나 공통적인 문화의 정신만은 죽지 않고 한자 속에 남아 있다. 한자문화권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요시한다. 최근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영어가 일종의 언어문화 패권을 주도하고 있다.
글로벌화라는 명분 아래 중국어와 영어가 서로 섞여 사용되는 파격적인 새 언어가 등장했다. 건축 영상 음식 등 일상 생활문화 자체가 '서양에 대한 모방'으로 채워지고 있다.
한자를 문화적으로 내실 있게 발전시켜 문화적 생명력을 진작시키지 못한다면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는 있어도 언어문화에 있어서 서양의 식민지를 면하기 어렵다.
여성문화연구 확대 기대
▦하가 토루(芳賀徹)일본 교토조형예술대 학장
글로벌화(세계화)는 단지 경제와 자본, 기술 등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본 등 특정국가의 생활문화 속에서 살아 숨쉬는 시(詩)적 느낌과 여운이 과연 어떻게 타 언어로 타 문화권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바로 글로벌화의 마지막 과제다. '시가(詩歌)의 느낌'을 글로벌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글로벌화에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크게 저항하는 것을 꼽는다면 시(詩)가 될 것이다. 반대로 한 문화의 글로벌화가 얼마나 성공적인가를 평가하기 위해선 당대의 시(詩)가 곧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시는 생활문화 속에 결집된 사회와 개인의 의식ㆍ느낌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일본의 '신여성' 문학사조는 시적 언어를 통해 일본사회의 글로벌화 과정에서 전통문화와 대립하고 화해하는 갈등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대화과정 속의 한중일 여성문화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보다 확대되길 기대한다.
▼토론▼
다양함속 보편성 찾아야
▦임진택 연출가ㆍ판소리꾼
동아시아 3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생활양식 속에서 과연 공통적인 실체가 무엇인지, 특장점을 찾아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밖으로 어떻게 이를 보편ㆍ타당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또 안으로는 세계화를 수용하는 자세에서 혼란된 가치체계를 잡아줄 수 있는 전통문화의 윤리관을 어떻게 계승해야 하는가도 시급한 과제다. 동학사상인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중요성이 새삼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국 언어 우수성에 관심을
▦황즈리엔(黃枝連) 홍콩 침회대 고문교수
한ㆍ중ㆍ일 3국이 공통적인 한자문화권이며 그 응집력이 강하다는 부분은 쉽게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한글과 일본 히라가나의 우수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3국은 개별 생활문화의 특수성ㆍ다양성을 우선적으로 서로 이해하고 존중함으로써 문화공동체 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한중일 3국은 폐쇄적이기보다는 개방주의적인 사회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를 계승ㆍ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배타적 연고주의는 문제
▦고하리 스스무(小針進)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조교수
한ㆍ중ㆍ일 3개국은 전통적으로 연고주의문화가 강하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5년간 서울에서 학생으로 공부할 때 연고주의 덕에 비교적 편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비행기표를 구입하는 데도 연고주의문화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으로 돌아가 보니 이 점에서 서울보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많았다. 연고주의는 나와 다른 사람을 배타적으로 구분하는 데서 비롯된다.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라는 점이 동전의 양면으로 작용한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제4주제- 문화산업(사회 최 민)
♠부제
동북아국가간 대중문화 개방과 상호교류
동북아 문화산업의 세계시장 구축을 위한 협력방안
▼주제발표▼
▦위에따이윈(樂黛云) 베이징대 중문과 교수=동서를 막론하고 문화의 다원적인 발전은 역사적 사실이다.
3국의 문화에는 오랜 기간 상호 영향과 침투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공동분모가 있다. 또 독특한 문화적 특징과 역사발전 속에서 각기 다른 독창성과 새로움이 있다.
유ㆍ불ㆍ도교의 종교문화는 한국과 일본에 전파돼 발전을 이뤘다.
또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 중국으로 유입돼 영향을 미쳤다. 3국의 문화적 관계는 시종일관 화합하면서 완전 동화하진 않았다(화이부동ㆍ和而不同).
세계 문화발전사에 매우 독특한 점이다. 서양문화와의 상호인식 속에서 보완의 역할을 조화롭게 이뤄야 한다.
▦마츠바라 다카토시(松原孝俊) 일본 규슈대 교수=21세기 문화는 무한경쟁시대다. 굳게 닫혔던 문화의 빗장이 벗겨진 후 도쿄 영화관에서 한국영화 '쉬리'가 상영됐다.
110만 여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또 지난 여름엔 일본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차게 앤 아스카'가 서울에서 일본어로 공연했다. 문화육성은 문화보호와 규제를 낳는다.
그러나 이젠 문화개방이 문화경쟁을 심화시킬 뿐이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에도 문화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와 노력이 강조되고 있다.
문화 획일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인터넷 등 정보 글로벌화를 통한 다양한 문화의 유입을 피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강명구(姜明求)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불평등한 문화산업구조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폐쇄적 블록화가 아닌 지역적인 수준에서 상호교류를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3국의 문화정책 자체에 대한 공동연구는 물론 문화관련 정책 입안과 집행기구의 역할 등에 대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
또 문화산업의 생산과 소비와 관련한 통계지표를 만드는 작업에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한ㆍ중ㆍ일 3국간 에 문화협력기금을 모을 것을 제안한다.
이같은 협력은 자국의 이해관계를 배제한 공동 목표의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토론▼
▦쉬신(徐新) 중국 마카오특구 정부문화국 고문=세계화가 각국의 다양성을 촉진한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부정적이다. 세계화와 다양성은 '물과 기름'과 같다. 글로벌화라는 명분으로 동양문화를 잠식할 뿐이다.
이는 지난 해 중국에서 개봉된 할리우드영화 '타이타닉'의 충격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당시 전체 중국시장의 3분의 1을 잠식했다.
▦마치다 미츠구(町田貢) 고려대 아세아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중국은 음식, 일본은 온천, 한국은 온돌이 발달돼 있다. 이같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 발전시킨다면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위대한 머리'와 한국은 '명석한 머리', 일본은 '잔 머리'가 뛰어나다. 3국간의 정보교류 센터 설립을 건의한다.
▦오지철(吳志哲) 문화관광부 문화정책국장='문화 패권주의'와 '문화산업의 무한경쟁시대'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한ㆍ중ㆍ일 3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특히 3국의 문화산업 중흥을 위해서 상호협력이 시급한 분야는 유통과 마케팅 분야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제5주제- 정보문화(사회 이경숙)
♠부제 : 한자, 한글, 히라가나의 사이버상 정보 공유 가능성
21세기 동아시아인과 사이버 문화
▼주제발표▼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아오야마학원대 교수=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구(舊)경제'는 통화금융위기로 큰 상처를 입은 뒤 IT(정보통신)산업을 성장회복의 대안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컴퓨터는 급속히 보급됐고 통신인프라는 완벽에 가까울 만큼 정비됐다. 동아시아의 IT산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3국은 협력해야 한다.
일본은 앞선 기술력으로 이 지역의 통신인프라 정비에 기여하고, 한국은 풍부한 예술계 인적 자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구축하며, 중국은 거대시장을 제공함으로써 IT산업 확대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공종열(孔宗烈) ET뉴스 사장=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정보문화의 특징으로는 인터넷에 대한 부모 세대의 높은 관심, 다양한 여러 법체계, 그리고 전국에 깔린 PC방을 들 수 있다.
특히 PC방은 초고속인터넷에 대한 엄청난 열기가 탄생시킨,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존재이다.
전국 1만 3,000여 개의 PC방을 통해 매일 평균 100만 명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다.
오프라인으로 존재하는 이 PC방을 잘 활용한다면, 시장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터넷 비즈니스는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앙야핑(蔣亞平) 인민일보 인터넷판 부주임=정보문화의 특징은 세계성, 디지털화, 상호교환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지리적 장애는 이미 사라졌으며(세계성), 모든 언어는 컴퓨터 식별과정에서 모두 0과 1로 변하고(디지털화), 인류는 인터넷을 통해 원시상태에 가까운 평등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다(상호교환성).
인류는 이러한 '문화용광로'와 같은 환경 위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표음문자 국가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은 표의문자를 쓰고 있는 중국에게는 '디지털 격차'를 유발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토론▼
▦모모세 다다시(百瀨格) 가마쿠라 인터내셔널 대표=탁월한 독자문화를 갖고 있는 3국이 협심한다면 컴퓨터에서 향기와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이번 토론회에서 거둔 여러 수확물을 각국 정부에 알리고 제안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백욱인(白旭寅) 서울산업대 인문자연학과 교수=정보문화는 급변하는 문화이자 열려 있는 문화이다. 또한 기존의 지연과 혈연으로 맺어진 수직적 문화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항ㆍ대안 문화이기도 하다.
문화 전반에 대한 정부의 폭넓은 지원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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