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앞길이 캄캄하기만 합니다"전날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인 농민들은 22일 텅빈 논과 배와 사과 등이 나뒹굴고 있는 들판에서 "농촌 경제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부도덕한 기업으로 인해 생긴 부실을 메우기 위해 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다는데 그 10분의 1만 농촌에 써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정부의 무성의를 성토했다.
전남 나주시 금천면에서 수확한 배 80톤을 절반도 팔지 못해 저장고에 그대로 쌓아놓고 있는 장영배(50)씨는 "올해 농협에서 3,000만원을 대출받아 재배면적을 늘렸는데 생산비(7,000만원)의 절반도 못건졌다"며 "빚을 내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 나주지역 3,700여 배 재배농가에서 생산된 배는 6만5,000톤에 달하지만 55%만이 지난해 절반 가격인 2만원(15kg상품)에 팔린 상태다.
충남 부여군 세도면 김명규(40)씨도 올해 4,000만원을 들여 방울토마토를 생산했으나 미국산 오렌지의 대량 수입으로 1상자(10kg)값이 생산원가인 1만4,000원의 4분의 1수준인 4,000만원선으로 폭락, 2,800만원만 건졌다.
김씨는 1995년 농협 대출금 등 1억2,000만원을 들여 비닐하우스 1,600평을 설치, 6년째 방울토마토를 생산했으나 이자 갚기도 벅차다고 하소연했다.
이웃 마을의 임익환(29)씨는 가격 폭락으로 본전도 건지기 힘들게 되자 최근 수확을 포기하고 1,000평에 재배한 방울토마토를 모두 뽑아버렸다.
지난 4월에는 같은 마을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던 고모(40.여)씨가 생활고를 못이겨 자신의 비닐하우스에서 자살했으며, 부여군 세도면에서는 3월이후 30여명이 영농을 포기하고 도시로 떠났다.
중국과의 '마늘분쟁'이후 값싼 중국산 마늘에 국내시장을 내준 마늘 농가도 지난해보다 20~30% 폭락한 1,500원(1kg)에 거래되자 양파로 작목을 바꿔 내년에는 양파 과잉생산에 따른 파동마저 우려된다.
벼농사와 축산농가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이홍근(34)씨는 "1만3,000여평에 벼농사를 지어 2,0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농기계 구입비와 자재.농약대를 제하면 실수입은 300여만원에 불과하다"며 "트랙터 구입비로 융자받은 6,000만원의 부채에 대한 원금 상환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 양돈협회 경남도협의회 박삼곤(48)회장도 "4월 구제역 파동이후 수출길이 막혀 산지 돼지값이 100kg 1마리에 10만6,000원(생산원가 14만6,000원)까지 폭락, 1만마리 이상 기업형 농가 6곳이 이미 파산했다"며 "불황타개를 위해 정부는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창원=이동렬기자
/나주=안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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