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대표 3인 특별기고출판계의 큰 잔치가 열린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책의 잔치인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좋은 책 만들기에 전념한 출판인과 저자들을 격려하는 자리이다.
올해로 41년째를 맞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출판인에게 꿈을 키워준 터전이었고, 상업주의로부터 양서를 지키는 보루였으며, 지식사회를 열기 위한 축제였다.
이 상은 지난 해 11월 1일부터 올 10월 30일까지 출간된 도서를 대상으로 30일까지 접수, 12월 중순 수상자를 발표한다. 유수한 출판사 대표들의 기고문을 통해 이 상의 의미를 조명한다.
"출판문화의 가능성을 일깨우고 용기를 주는 상"
●한길사 김언호 사장
책을 쓰고 만들고 읽는 출판문화 행위는 한 국가사회의 역량을 뒷받침한다. 출판문화의 이 같은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진흥시키는 일을 해온 한국일보의 선구적인 문화의식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시대의 출판문화란 어느날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한 두 출판인에 의해서 가능하지도 않다. 그것을 존재ㆍ발전시키는 다양한 사회적ㆍ문화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관념적인 언어유희가 아닌, 구체적인 예산으로 뒷받침되는 국가정책이 있어야 한다.
이 땅에서 소망스런 출판문화를 창출해내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좋은 책을 수용해주는 사회ㆍ문화적 인프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우리 출판인들은 고군분투하며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열중하고 있다.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가난한 우리 출판인들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심어줘 왔다.
이제 고급한 지식과 정보로 국가사회가 일어서는 시대가 됐다. 이 지식과 정보를 창출해내는 책 쓰기ㆍ책 만들기ㆍ책 읽기야말로 21세기의 개인적 삶과 국가적 삶을 가능케 하는 동인이다. 출판문화의 위대한 가능성과 잠재적 역량을 이 상은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책은 우리의 꿈이며 미래 따뜻한 채찍으로 일깨워"
●푸른숲 김혜경 사장
출판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내가 부르던 유행가가 있었다. 나보다 하루라도 일찍 출판을 시작한 분이라면 무조건 존경한다고. 이제 십년이 되었는데 그 마음은 여전하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날이 갈수록 출판은 참 힘든 일이라고 뼈저리게 깨닫는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독자가 무섭고, 열심히 좋은 책 만드는 일로만 해결되지 않는 출판 환경이 두렵다.
내가 처한 환경이니 나 스스로 노력해 가꾸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료들과 함께 호미며 곡괭이며 들어보지만 진이 빠진다. 좋은 장비는 없을까? 단숨에 기름진 터전으로 바꿀 묘안이 없을까 궁리하게 된다.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나 같은 출판인에게 용기를 주는 제도이다. 책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표현으로 40여년 한결같이 시상을 해온 이 상은 출판인에게 보내는 따뜻한 채찍이다.
우리 출판인은 이 채찍으로 용기를 얻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운을 얻는다.
이 상은 독자에게도 역시 따뜻한 채찍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책은 여전히 소중한 존재이며 보물창고이며 청량한 샘물이며 우리의 꿈이고 미래임을 이 상은 말하고 있다.
"상업적 유혹 흔들리지 않게 출판인 지키는 든든한 친구"
●21세기북스 김영곤 사장
책을 만드는 일도 천상 '사업'이다 보니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돈을 벌어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때만이 계속해서 더 좋은 책을 펴낼 수 있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우려하듯이, 그것이 출판의 유일한 또는 가장 큰 목적이 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책은 지식의 보고로, 정보의 창구로, 꿈의 공간으로, 현실에 대한 위안 또는 타개의 지침으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켜온 기반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위상에 대한 구구한 견해와 논쟁들이 가속화하면서 출판인들 스스로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그런 면에서 독보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41년이라는 세월을 변함없이 지켜온 '좋은 책'에 대한 고집이 그렇고, 경박함에 빠지기 쉬운 출판인들에게 주는 청정한 경고가 그렇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좋은 시절'이 얼마나 있었나 싶지만 요즘처럼 힘든 때를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 힘든 때일수록 출판인의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역대 저작상 수상 출판사
민음사·지식산업사는 6차례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은 척박한 현실에서 좋은 책을 만든 출판사를 위한 격려의 무대이다. 40년 역사의 이 상을 통해 수많은 출판사들이 '양서의 산실'로, 한국출판문화를 이끌어가는 '맏형'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지금까지 저작상을 한 번이라도 수상한 출판사는 모두 53개사. 이 중 16차례나 저작상을 '휩쓸듯이'가져간 출판사가 1953년 창립한 일조각이다.
1963년 제4회 때 송욱씨의 '시학평전'을 출품해 첫 수상을 한 이후 9회부터 13회까지 5년 연속 저작상을 수상,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최고의 저자를 배출하는 출판사로 떠올랐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출판사는 현재 매출액 1, 2위를 다투는 거대출판그룹 민음사(1973년 창립)이다. 1987년 '홍대용평전'으로 한국백상출판문화상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이래 1991년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사'에서부터 95년 '의상-그의 생애와 화엄사상'까지 5차례 연속 수상을 포함, 모두 6차례 상을 받았다.
역시 6차례 저작상을 수상한 지식산업사(1971년 창립)는 1975년 15회 때 '한국고대사회연구'로 일찌감치 무대에 선 이후 1980, 90년대에도 꾸준히 양서를 출간해온 저력의 출판사이다.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돌베개, 솔, 개마고원, 역사비평사 등 중견ㆍ신생 출판사가 이름을 빛내고 있다.
대학출판부로는 이화여대출판부가 1965년 '개발과정에 있는 농촌사회연구'로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기관이나 단체로는 한국색채연구회가 1964년 '색명(色名)대사전'으로 처음 저작상을 받았다.
김관명기자
kimkw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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