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군데 중 한곳을 골랐지만 정말 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올해 명문 K대 공대를 졸업하는 심모(27)씨의 고민이다. 기업퇴출과 구조조정으로 화두가 된 취업난도 심씨에겐 남 얘기다.
심 씨는 "가고 싶은 기업은 채용 계획이 없어 일단 안전하게 5군데 원서를 냈는데 세곳이나 됐다"며 "신중하게 고르긴 했지만 솔직히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씨가 합격한 곳은 H사, S사, L사 계열사 등 들으면 알만한 쟁쟁한 대기업이다.
심씨는 " 무려 10군데나 붙었지만 취업을 보류한 친구도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배짱 취업대기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졸업을 앞둔 명문대 출신들이다.
특정 기업에 취직할 생각도 없으면서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원서를 내고 막상 합격하면 취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배짱 대기자'의 출현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기대 때문이다.
4곳에 합격했지만 취업대기를 선택한 김모(26ㆍY대 경영)씨는 "'IMF한파'로 하향 취업했던 선배들이 그 후 경기가 풀리자 후회하고 있다"며 "같은 처지가 되지 않기 위해 경기가 풀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접수의 일반화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직접 원서를 받아 입사지원서를 작성했던 과거와 달리 간편하게 지원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악용되고 있는 셈.
이 때문에 신규채용자의 누수를 막기 위해 자필로 쓴 원서를 받는 '아날로그'방식으로 선회하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배짱 대기자'로 피해를 당하는 쪽은 중하위권 대학 출신과 지방대생이다.
지방 S대를 다니는 제모(25ㆍ경제학)씨는 "취업난도 문제지만 무작정 지원해 합격하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라며 "본사에서 뽑아 지방에 근무하는 경우도 서울의 명문대생 몫이어서 정작 그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도 기회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기업도 골치를 앓고 있다. LG전자 채용팀의 최명철(35) 과장은 "최종 입사 내정자 중 탈락자를 예상하고 채용인원의 120~130%를 뽑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밝혔다.
㈜한진리크루트 이미정(27ㆍ여) 헤드헌팅 팀장은 "심각한 취업난 속에 실력 있는 일부가 취업 기회를 독식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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