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갑숙이란 인물이 가진 '화제성' 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관음적, 노출적 성을 노린 것은 아니다.'봉자'가 그의 성적 행위에 집착하지 않고, 노출 역시 선정적이기 보다는 초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 박철수 감독은 서갑숙이란 인물이 던진 파문 속에 숨어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상처와 의미의 이미지들을 영화와 연결시키고자 했는지 모른다.
김밥 가게에서 일하는, 술에 절어 사는 40대 후반의 여인 봉자(서갑숙)는 상처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너무나 착하고 바보 같은 여자이다. 그 여자가 어느날 불쑥 자기 공간으로 들어온 상처투성이인, 그 상처를 자기 학대와 웅크림으로 나타내는 10대 소녀 자두(김진아)를 받아 들인다.
그런 자두에게서 봉자는 자신의 상처를 발견한다. 위선에 가득찬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순수를 발견하고는 동화돼 간다. 다름 아닌 인간의 진정한 교류이다.
거기에서는 동성애적 감정조차 모성애적 감정으로 치환된다. 영화는 이런 교감이야말로 가장 미천하고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에게서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봉자' 는 태어나고(산부인과) 먹고(301,302) 한집에 살고(가족시네마) 죽고(학생부군신위) 하는 것에서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박철수 감독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그의 이야기 방식은 여전히 풍자적이다. 왜 김밥 만드는 일을 고집하는 봉자의 순진한 모습이 우습고 바보스러울까. 그 웃음은 우리는 순수하지 않다는 역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봉자가 UFO의 도래를 믿는 사이비 교주에 집착하는 것은 차라리 외계인보다 못한 '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으로부터의 '구원'이다.
봉자의 바보같은 말투와 대사는 지적인 위선에 대한 조롱이다. 곽순경(김일우)의 봉자에 대한 유치한 일편단심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척하지만 계산적인 우리의 사랑을 비웃는다.
'봉자' 는 이런 풍자에 대한 자의식만 강할 뿐, 그것을 영화적 장치로 전달하는 방식을 외면했다. 박철수 영화는 영화적 상상력이나 조작에 반발한다. 그런 의식적 태도가 오히려 '봉자'를 넌센스적이고 바보스런 코미디로 만든 것은 아닌지.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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