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검찰은 이렇게 자부(自負)한다."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지금 검찰관서 곳곳에 나 붙어 있는 이 표어는 98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초 검찰 업무보고 때 한 말이다.
그 때 대통령의 화두는 "나도 감옥에 있어 봤는데."였다. 그런 체험을 깔고,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과거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고, 권력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이 뒤 끝에 한 말이 모두의 경구(警句)다. 그는 이렇게 말을 잇고 있다. "여러분께 약속하건대, 이 정권은 절대로 지연과 학연을 따지지 않고, 여러분에게 권력을 위해 일해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로부터 2년 반이 지난 지금 우리 검찰의 위상은 어떤가. 야당시절 김 대통령이 겪었던 검찰 행태와, 지금 야당이 보는 검찰상은 얼마나 다른가. 이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지금 파탄지경에 빠진 정기국회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면, 그 그림이 너무 어둡지 않은가.
돌이켜 보면, 지난 10여년간의 민주화 과정이 우리 검찰에게는, 특히 '국민의 신뢰와 존경'이란 면에서는, 전락(轉落)의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더욱 딱한 것은 그 사이 검찰의 힘은 커지고 신뢰는 떨어졌다는, 힘과 신뢰의 반비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쉬운 예가 공안검찰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권력의 공안기능을 조정하던 이른바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안기부가 주재했었다. 지금은 그 구실을 검찰이 한다.
이른바 공안합수부란 것이다. 이 기구는 99년 3월의 대통령 훈령으로 검찰의 공식기구화했다. 검찰의 힘도 그 만큼 커졌다. 그런 권력의 확대과정이 곪아 터진 것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이다. 결국 검찰은 공안정국 시비의 한 초점이 된다.
검찰의 신뢰추락은 이 과정과 병행하고 있다. 신뢰추락의 까닭을 검찰의 정치화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비슷한 현상은 대검 중수부를 통한 사정(司正)기능 집중에서도 볼 수가 있다. 끊임 없는 표적(標的)사정 시비와 함께 검찰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
우리 검찰의 불행은 그 사이 검찰개혁 입법이 모두 실패했다는 사실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모처럼의 검찰총장 임기제(88년 신설), 검찰의 청와대 등 파견금지 조항(97년 신설)은 인사권과의 자의적인 인사로 공문화(空文化)했다.
검찰총장의 퇴임 후 취업제한, 정치활동 금지규정(97년 신설)은 현직 총장의 위헌제소로 시행 반년 만에 사문화(死文化)했다.
그러니, 민주화 10여년이 지나서도 검찰은 달라진 것이 없다. 개혁 미성공(未成功=아직 성공 못함)이 아니라, 개혁 미착수(未着手=아직 착수 못함)인 꼴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정기국회의 검찰총장 탄핵소추 파동은 '올 것이 왔다'는 경우에 해당한다. 일회성 정쟁(政爭)으로만 치부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번 파동의 본안(本案)은 야당이 탄핵소추안과 함께 제기한 검찰개혁 입법구상이라야 옳다. 검찰총장 한 사람의 진퇴야 어찌됐건, 검찰개혁은 더 미룰 수가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을 저지르고 나서 여당이 펄쳤던 광고공세 따위는 부질없는 짓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총장 자퇴에 무게를 싣는 듯한 야당의 사태 수습방안도 시야가 좁아 보인다.
어차피 국회는 열려야 하고, 사태는 수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대전제로 야당은 대통령의 검찰개혁의지, 검찰의 중립화 보장을 요구해야 선후가 들어맞는다.
그리하여 검찰개혁을 구체적인 의제로 설정하는 것이, 정쟁에 지친 국민들 보기가 떳떳할 터이다.
이 점 국민들이 바라는 것도 대통령의 결단이다. 그 방향은 대통령 취임초 어록(語錄)에 다 들어 있다. 그 말들을 제도화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정치가 할 일이다.
칼럼니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