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일] 소설가 번역가 이윤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일] 소설가 번역가 이윤기

입력
2000.11.21 00:00
0 0

군대 시절 베트남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것은 1972년 4월이다. 잊지 못할 많은 일들이 베트남전 풍경 속에 숨은 그림으로 남아 있지만 그것은 쓰지 않으련다. 잔여 복무 기간이 3개월 가량 남아 있었다. 참전 경력이 있는 병사들은 휴전선 부근 최전방에 배속된다고 했다.서울에서 가까운 사단본부까지는 택시, 연대본부까지는 기차, 대대본부까지는 버스, 중대본부까지는 부식차(副食車)를 타고 가야 하는 머나먼 길이었다. '아침이슬'이 널리 불리기 시작하던 5월의 화창한 봄날 오후 최전방 중대본부에 도착했다.

관측소 근무 명령이 떨어진 것은 그 다음날이다. 북한의 대형 확성기가 퍼부어대는 욕을 먹으면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관측소 오르는 순간 북한 땅을 처음 보았다. 우리 산하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적이 월남의 베트콩에서 북한군으로 바뀌어 있는 것에도 충격을 받았다.

날마다 충격을 받으며 포대경으로 북한군 동향을 관찰, 보고했다. 욕을 참 많이도 먹으면서 눈물 또한 많이 흘리면서 잔여기간 3개월 복무를 마쳤다. 제대 신고하러 대대본부로 가는 날 아침 막걸리 두 되를 마시고 취한 채 '아침이슬'을 목청껏 부르면서 울면서 걸었다.

그 관측소, 제대후 다시 가보고 싶었지만 민통선 안이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관측소가 있는 산 이름은 신문에 자주 났다. TV도 그 산에 있다는 관망대를 자주 비추어 주었지만 내가 근무하던 관측소는 아니었다. TV 볼 때마다 내가 근무하던 관측소에 한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했다.

10월 경기도 의왕에 사는 친구가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했다. 그의 자동차를 얻어 타고 수도권 외곽순환도로 약 1시간 반을 달렸다. 강건너 풍경이 아무래도 낯이 익어 어디냐고 물어 보았다.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오두산 관망대라고 했다.

거대한 관망대는 내가 근무하던 바로 그 관측소 자리에 서 있었다. 아, 거기였다. 나는 그제서야 나의 관측소와 TV에 나오던 관망대를 동일시할 수 있었다.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귀순자가 만들었다는 북한 냉면을 먹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지만 30년 이쪽 저쪽의, 오버랩되는 두 풍경이 마음에 걸려 냉면은 잘 넘어가지 않았다.

제대하는 날 걸으면서 부르던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를 남북이 함께 부르는 날은 내 평생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다.

이윤기

소설가ㆍ번역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