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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의사 선생님, 제발 돌아오세요

입력
2000.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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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갈 일이 없던 젊은 날 우연히 의사란 직업을 존경하게 됐다. 가까운 친구가 술을 마시고 집에 가다 넘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는데, 뇌에 충격이 컸던지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소생할 가망이 없다는 병원측 '선고'를 받고 가족과 친구들은 절망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는 병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수련의(지금의 전공의) 한 사람의 헌신적인 보살핌 때문이었다. 친구와 그 의사는 의형제를 맺어 지금도 가까이 지내고 있다.

오래 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도 의사의 고마움을 절감했다. 길을 건너다 택시에 치인 어머니는 무의식 상태에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나중에 주검을 보니 머리에 수술흔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한 두개골 절제수술 자국이었다.

신원도 모르는 환자를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려고 노력한 이름 모를 의사가 너무 고마워 인술이란 말이 절로 떠올랐다.

몇 해 전 내가 사고를 당해 사경에서 목숨을 건지고부터는 의사에 대한 존경은 '신앙'으로 변했다. 강한 타박으로 늑골이 부러지면서 뼈 끝이 비장을 찔러 내출혈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지독한 통증이 가신 뒤 이젠 괜찮으려니 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오한과 현기증이 일어나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서 응급실 간이침대에 누었다. 추위와 어지러움은 더욱 심해지고,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가족의 눈에 내 얼굴색은 백지 같았다 한다. 응급수술 당시 내출혈량이 3,000씨씨였다 하니 수술이 조금만 늦었으면 살아날 수 없는 상태였다.

인간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부귀, 영화, 명예, 권력, 쾌락, 행복.. 인간이 추구하는 이 모든 가치도 목숨이 있을 때 소중한 것이지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인가.

죽어가는 목숨을 살리고, 병을 고치는 일을 직업에 충실할 때만 의사가 존경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2000년 한국 의사들이 여전히 그런 존경의 대상이 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의료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걸핏하면 일제폐업이요, 툭하면 파업이니 목숨이 위태롭거나 병고에서 벗어나고싶은 환자들의 절망과 고통이 어떻겠는가.

존경과 고마움도 치료를 받을 때의 얘기다. 의사가 있으면서도 치료를 받지 못해 응급환자 죽거나 입원환자의 병이 깊어지면 원망과 원한의 대상이 된다. 병원경영이 어려워져 수십 수백억 원의 적자가 쌓여가는 것을 왜 모른 체 하는가.

의료제도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널리 알리는데 성공했으니 투쟁의 명분은 어느 정도 인정 받은 셈이다. 그러나 의약정 3자 협의가 타결된 마당에 합의안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일부 의사들의 움직임은 수긍하기 어렵다.

협상권을 위임한 대표단이 결정한 것이니 다소 불만이 있어도 받아들이고,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는 것이 구성원으로서의 도리가 아닐까. 소속과 직급과 신분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른 그 많은 의사들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합의안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

의료소비자인 수천만 국민과, 상대 업계인 약계가 있는데 어떻게 자신들의 이익만 내세울 수 있는가.

의협 집행부와 의대교수 등 지도층은 합의안이 부족한대로 수용할 만 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민은 이쯤에서 투쟁을 끝내고 환자들 곁으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곧 구성될 대통령 직속 의료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 위임하고 지켜볼 일이다.

오는 30일은 의사들이 '봉기'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또 해를 넘겨 투쟁을 계속한다면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되돌리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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