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동원증권, (주)팬텍, 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월례 과학강연회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의 첫 강연이 18일 오후 연세대 상경대 대강당에서 열렸다.
첫 강연의 주제는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일까-우주의 나이', 강연을 맡은 이영욱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150억년으로 추정되는 우주의 나이를 규명하려는 천문학자들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의 논쟁을 귀중한 사진자료와 함께 소개하면서, 광할한 우주에서 인간은 존재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이야기했다.
강연이 끝난 후 우주의 미래와 과학자로서 걸어야 할 길에 대한 질의가 쏟아지는 등 강연회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중세 신학자 성 어거스틴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신은 무엇을 했는가?" 당시 신학자들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고 답했지만 그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란 신이 창조한 우주의 한 특성이며 우주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는 팽창한다, 팽창엔 시작이 있다.
빅뱅우주론의 요점은 태초에 시간, 공간, 물질의 창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생각이 바뀐 것은 불과 70여년 전의 일이다.
1929년 허블은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멀리 있느냐에 따라 빨리 멀어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관측했다. 크게 놀란 사람 중 하나가 앨버트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상대성이론을 우주에 적용한 결과 우주가 팽창하거나 또는 중력에 대항하는 미지의 힘이 있다는 두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냈는데 결국 후자 즉 우주상수를 택했고 나중에 이를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자탄했다.
시간의 역사 즉 우주의 나이는 우주의 팽창계수로부터 추정된다. 마치 시속 100㎞의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가 서울을 출발, 500㎞ 떨어진 부산까지 도착하는 데 5시간 걸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방법과 원리가 같다. 이 결과 우주 나이는 약 100억년으로 추정된다.
우주 나이를 측정하는 또 다른 방법은 구상성단(求狀星團)의 나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별은 중심부 수소가 핵융합반응을 하다가 수소가 모두 떨어지면 헬륨 핵융합반응을 한다.
이때 중심부는 급격히 수축하고 별 바깥부분이 팽창, 붉은색을 띠는 적색거성이 된다. 컴퓨터로 계산한 결과 적색거성이 되기까지 시간은 별의 질량에 달려있다.
태양은 100억년이 지나 적색거성으로 진화해 수명을 다하고 태양보다 질량이 10배 큰 별은 생성된 지 1,000만년 만에 진화한다.
구상성단은 약 10만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막 적색거성이 된 별이 어느 정도 질량이냐를 재면 나이를 알 수 있다. 우리 은하의 구성상단에서는 태양의 80% 질량의 별이 적색거성으로 진화하며 결과적으로 나이는 약 120억~140억 살로 추정된다.
별이 우주보다 오래됐다?
이제 문제가 생겼다. 별(120억~140억년)이 우주(100억년)보다 더 오래됐기 때문이다.
이는 21세기의 큰 난제다. 한가지 가능성은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우주상수가 존재한다면 팽창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는 뜻이다. 즉 고속도로상의 차는 시속 100㎞로 온 게 아니라 시속 50㎞에서 가속해 시속 100㎞가 된 것이고 부산까지 7시간쯤 걸린 것이 된다. 우주의 나이는 중력에 반하는 반중력에너지를 검증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결국 우주의 나이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가장 오랜 우주화석, 즉 과거의 빛을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 중 하나가 연세대 자외선우주망원경사업단과 미국 프랑스와의 공동프로젝트인 '은하진화탐사선(GALEX)'이다.
별은 갓난아이때(형성초기)와 죽음을 앞둔 때(헬륨연소단계) 막대한 자외선을 방출하는데 이를 검출하려는 것이다.
은하진화탐사선은 우주를 샅샅이 뒤져 가장 먼, 즉 가장 오래된 천체를 찾아 나이를 측정하고자 한다.
인간과 우주
150억년의 우주 나이에 비해 고작 80년을 사는 인간은 하찮은 존재일까? 인간은 세포로 이루어졌고 세포는 DNA로 구성되며 DNA는 곧 분자, 분자는 곧 원자로 만들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원자가 탄소, 산소, 질소다. 우리를 구성한 원소들은 머나먼 과거의 별 속에 있었다.
가스구름에서부터 탄생한 별들은 수소핵융합반응 결과 헬륨을 만들고 헬륨 핵융합반응 결과 탄소 산소 질소를 만들다.
초신성이 터지며 별이 죽으면 탄소, 산소 등 원소들이 우주공간으로 흩어져 다시 별을 만든다. 2세대 별은 아버지별보다 훨씬 무거운 원소를 함유한다. 이런 일이 은하라는 생태계 안에서 오늘도 일어나고 있다.
우주 생성초기에는 수소와 헬륨밖에 없었다. 생명체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선 약 150억년의 우주역사가 필요했다.
마치 7년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지내다가 한여름에만 시끄럽게 우는 매미처럼 우주는 150억년간 조용히 인간의 출현을 준비해 온 셈이다. 인간은 우주역사의 긴 기간 중 특별한 시간 바로 지금에야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과학이 규명한 여러 자연법칙과 그 계수들 즉 만유인력상수, 플랑크상수, 전자와 양자의 질량값, 우주의팽창계수 등은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탄생하지 않았다.
하나의 상수값만 조금 변형해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해보면 수소와 헬륨만 있는 심심한 우주, 또는 너무 빨리 사라지는 우주가 된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가 우연히 발생할 확률은 너무나 적다. 극히 미세한 조정이 우주탄생 초기부터 필요한 것이었다.
과연 태초부터 거대한 계획이 있었을까? 이는 과학의 차원을 넘는 문제지만 어쨌든 인간은 대단한 존재다. 나를 위해 이 거대한 우주의 역사가 전개됐기 때문이다.
김희원기자
■ 개막식 이모저모
■ 21세기 이끌어갈 과학의 세계를 탐험하는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이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18일 연세대에서 열린 제1회 강연회장에는 과학도를 꿈꾸는, 혹은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중ㆍ고등학생부터 80대의 할아버지까지 20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우주의 나이는 몇 살일까 - 우주의 나이'를 주제로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이영욱 교수가 2시간 가까이 풀어낸 우주의 신비에 매료됐다. 적어도 이날 이곳에서 만큼은 과학은, 그리고 과학자는 더 이상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이 교수는 단지 과학지식의 전달자에서 그치지 않고, 과학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길라잡이로서 친근하게 다가갔다. 우리의 과학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 진중하면서도 격의 없는 토론에서 청중들이 던지는 질의는 이 교수도 놀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닫힌 우주와 열린 우주의 차이를 묻는 질문처럼 과학적 지식에 대한 갈구를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한계를 묻기도 했다.
정한구(서울 종로구 평창동)씨의 "공간도 시간도 물질도 없는 절대무(絶對無)를 전제하는 빅뱅우주론에서 신의 창조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이 교수는 "관측과 실험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만 과학의 영역에서는 말할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 신모(안양고 3)양은 허블의 우주팽창론 제기 후 한동안 폐기되다시피 했던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개념이 다시 도입되게 된 배경을 물었는데, 이 교수는 과학은 공상에 그쳐서는 안되며 관측과 실험에 근거해 이론을 검증함으로써 진보하고 진리에 한걸음씩 다가설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 "과학도서를 보면 빅뱅을 표현한 그림에서 고밀도원자의 폭발을 흰색으로 나타냈다"며 휘어진 3차원 즉 4차원으로나 설명 가능한 빅뱅의 순간을 표현한 영상에 의문을 제기한 이승근(인헌중 3)군은 해박한 과학 지식으로 좌중의 탄성을 자아냈다.
■ 특히 '다시 태어나도 천문학자로서의 길을 걷겠다'는 이 교수의 신념은 과학도를 꿈꾸는 많은 학생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었다. "기초과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권유로 공학을 선택했다"는 한 대학생(연세대 공학계열 1)은 "천문학자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낀 적은 없는가"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젊음과 꿈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며 "21세기 우리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우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세계를 무대로 삼아 도전할 것"을 어린 학생들에게, 그리고 그 부모들에게 당부했다.
■ 최고령 참가자였던 김용희(85ㆍ서울 양천구 목동)씨도 손자뻘 되는 중ㆍ고등학생들과 더불어 진지하게 청강했다.
김씨는 "전기공학을 전공해서인지 아직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회가 남아있다"며 "나이가 들더라도 과학에 대한 호기심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러한 욕구를 풀 수 있는 드물지만 좋은 기회였고, 장래가 창창한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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