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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이영희-양상호 편집부장 "마음의 아랫목은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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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 이영희-양상호 편집부장 "마음의 아랫목은 있어야죠"

입력
2000.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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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려울수록 따뜻한 이야기가 인기이다. 이 때문에 명사들의 잔잔한 글과 독자들의 감동적인 사연만으로 꾸미는 작은 잡지가 17종이나 될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다.책도 마찬가지. 보통 사람들이 겪은 감동적인 일화를 담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이레출판사)는 300만부 가까이 팔리며 후속책이 10권이나 나왔다. 작은 잡지 '작은 이야기'도 이 책 덕분에 탄생했다.

작은 잡지의 효시격인 '샘터'와 '작은 이야기'의 편집부장이 만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을 이야기했다. 샘터사는 1975년 '노란손수건'시리즈로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일 수 있음을 개척한 출판사이다.

●이영희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8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 샘터출판사에 입사했다. 기획출판부장을 거쳐 1998년 9월부터 편집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됐고 '작아도 두렵지 않아'등 여러 권의 장편동화집을 출간한 동화작가이다.

●양상호

196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2년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해 월간지 '코리안 트래블러'에 입사했다. 월간 '좋은 생각' 편집장을 거쳐 1999년부터 월간 '작은이야기' 편집부장을 맡고 있다. 올해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을 받고 등단한 시인이다.

-먼저 잡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영희= 샘터는 70년 4월에 태어났습니다.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당시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장이었는데,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가난 때문에 절망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서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잡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양상호= 우리는 이 시대 사표가 되는 이들의 정신을 담는 책을 만들어 보자고 지난해 1월 잡지를 창간했습니다. 다른 작은 잡지들은 주로 독자의 글을 싣는데 우리는 '천천히 읽을수록 좋은 책'을 모토로 작가의 글을 80%, 독자의 글을 20%정도 싣고 있습니다.

▦이영희= 저희는 3ㆍ3ㆍ3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작가의 글 30%, 독자들이 보내는 글 30%, 감동적인 사연은 있지만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기자가 취재한 글 30%정도를 안배합니다.

▦양상호= 독자 글이 기성작가 글보다 진솔해서 독자의 반응도 더 좋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 이민한 한 할아버지가 한국에 오고 싶은데 친척이 아무도 없어 고민이라는 사연을 보내왔지요.

할아버지니까 글 솜씨가 있었겠어요? 하지만 할아버지 마음이 통했는지 제주도 등 각 지방에서 안내를 해주겠다는 독자 전화가 10여통 걸려왔어요. 이 사실을 전해들은 할아버지가 정말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이영희= 맞아요. 우리 책도 해외 동포 독자가 꽤 있어요. 몇 년전에는 코소보에 파병된 프랑스 외인부대원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부모님이 샘터를 보내주신다며 한국인 외인부대원 수십명이 잡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겁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 우리 잡지가 간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그런 사연들 하나하나가 책을 만드는 저희에게 힘이 됩니다.

-독자층은 어떤가요.

▦양상호= 20대 여성 독자가 절반 이상입니다. 문화적인 욕구가 강한 층이니까요.

▦이영희= 20대 여성이 산다고 해서 꼭 그들만 읽는 것은 아니예요. 이런 책의 독자 수는 통상 판매부수에 4를 곱해야 한다고 하거든요. 온 가족이 돌려보는 책이니까요.

▦양상호= 그래서 화장실용 책이라고도 부르죠.(웃음) 작은 잡지는 광고도 거의 없고 책값도 2,000~2,500원 정도로 싸서 적자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만 해도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를 팔아서 번 돈을 작은이야기에 투자합니다. 그래도 샘터처럼 30년 가는 책을 만들자는 게 바람입니다.

-경제가 불황일 때는 이런 종류의 잡지가 더 많이 팔린다는데.

▦이영희= 아무래도 경제가 어려워지면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싶겠죠.

▦양상호= 제가 보기에는 경제적인 요인보다는 문화적인 환경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작은 잡지에 글을 써보내는 사람은 인터넷과는 거리가 있는 30대 지방독자가 주류입니다. 이들은 인쇄매체에 더 익숙하고 문화향유의 기회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편집장으로 본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있으면 들려주세요.

▦양상호= 작은이야기에는 '내 인생의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거기에 보내주시는 글들은 어느 글이라 딱히 고를 것없이 모두 눈물겹더라구요. 내용의 80~90%가 가족사와 관련된 얘긴데요, 시골에 부모님을 두고 객지에 사는 아들 얘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원자력발전소에 근무하던 아들이 갑자기 다른 발전소로 발령을 받아 이사했는데 너무 바빠서 부모님꼐 연락도 못 드렸대요. 몇 달이 흘러 추석에 부모님 드릴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마을을 찾았는데 그맘때면 동구밖에서 기다리시던 아버님이 안보이시더래요.

그래서 어머님께 "아버님 어디 가셨냐"고 여쭈니까 "넉 달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더랍니다. 동네에 노인들만 살다보니까 상(喪)을 당해 자식에게 연락을 하려고 해도 연락처가 바뀌어 연락할 방법도 몰라 알리지 못했던 거예요.

이 사연을 보낸 아들은 그제서야 사는데 쫓겨서 제일 소중한 것을 놓치고 지내온 자신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더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분의 사연을 읽고 저는 자본에 끌려다니면서 삶의 근본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되돌아보는 여유를 주는 것이 우리 책의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영희=지난해 편지를 보냈던 30대 주부가 기억에 남습니다. 집안이 포목상을 했는데 불이 나서 온 가족이 거리에 나앉았답니다. 다시 집안을 일으키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던 아버지가 나중에 딸에게 "샘터에 나온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힘을 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사소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솔직함과 삶의 재미가 나오는 것 아닌가요. 작가 정채봉씨가 부장으로 계실 때니까 80년대 이야깁니다. 그때 시댁이 반대하는 결혼을 한 부부의 사연을 받은 적이 있었답니다.

잘 사는 시댁에서는 부부를 쫓아냈고 학생이었던 남편은 구두닦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었답니다. 구두닦이 하는 건물이 10층이 넘었는데 구두 수거하러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집에 오면 다리가 아프다고 그랬대요.

저녁마다 아픈 남편의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부잣집 아들인 이 사람, 나만 만나지 않았어도 이 고생 안하는 건데"라며 가슴이 아팠다는 아내의 사연이었는데요.

시댁에서 샘터에 실린 부인의 글을 읽고 "이 정도면 우리 며느리로 손색이 없다"면서 아들 부부를 용서했다는 거예요. 잡지 20주년 되던 90년, 제가 기자로 있을 땐데요, 사연의 주인공인 부인이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처럼 샘터의 역할은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화해시켜주는 마당이라고 생각해요.

또 특별한 글 솜씨가 없는 보통사람들이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자긍심으로 일합니다.

▦양상호= 맞아요. 최근 우리 잡지에서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세상에 알리지않고 좋은 일을 하는 분들을 소개해달라는 독자제보 코너를 만들었지요. 벌써 16명이나 소개했는데요.

우리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희망통장'을 만들어 독자가 후원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내년 3월쯤에 우리 출판사도 돈을 보태 16명에게 후원금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이영희= 재미난 에피소드도 있지요. 어떤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술 먹다 옆 사람이랑 싸워 경찰서에 붙들려 갔답니다. 그런데 이 사람 가방에서 샘터가 나오자 경찰이 "샘터 읽는 사람 중에는 나쁜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풀어줬대요. 풀려난 그 사람이 편지를 보내와 알았지요.(웃음)

-세상은 어지러운데 너무 좋은 이야기만 들려준다는 비판도 있지 않습니까.

▦이영희= 사람들은 신문이나 방송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 나쁜 이야기에 더 많이 노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책이라도 세상은 아름답고 충분히 살만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입니다.

▦양상호= 우리 책에 늘 감동과 미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분노도 있고, 절규도 있습니다. 단지 이런 분노나 절규를 그냥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까지 보여주자는 것이죠.

▦이영희= 주어지는 감동은 오래가지 못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잖아요.

저는 앞으로 사람들이 자신 안에 있는 동심, 순수, 행복 이런 것들을 찾는 일을 도와주는 잡지를 만들고 싶어요.

▦양상호=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잡지를 만들고 싶어요. 생각, 고통, 기쁨, 감동을 나누는 그런 잡지 말입니다. 세상엔 그런 것이 더 필요합니다.

진행 노향란기자

ranh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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