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거장, '고귀한 존재'를 알현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거장, '고귀한 존재'를 알현하다

입력
2000.11.17 00:00
0 0

달라이 라마 일대기를 다룬 쿤둔1959년 3월 10일, 18세의 티베트 청년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그것은 뒷날 복합적 의미를 지닌 세계사적 사건이 되었다. 사회주의 거대 강국 중국과 본격적으로 대치하면서 '망명정부'를 이끌게 된 그 청년이 티베트의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초였다.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권과 미국의 냉전체제 아래서, 미지의 고원 티베트에서 탈출한 이 지도자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대답은 지금까지도 복합적이고 대립적이다. 한낱 전근대적 문명 지도자에 불과한가, 아니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이용한 냉전체제의 산물인가.

18일 개봉하는 영화 '쿤둔(Kundun)'은 영상 리얼리즘의 거장인 미국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그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한 영화이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 텐진 가초가 제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아로 인정받고, 티베트 지도자가 되는 과정과 중국의 침략 속에서 인도로 망명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삶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포착해간다. 1998년 미국에서 발표됐을 때 뉴욕비평가협회, 전미비평가협회 등은 각종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했다.

미국에서의 달라이 라마 인기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영화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답게 뛰어난 영화적 리얼리티를 성취했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카메라는 삶의 격류에 휩쓸리지 않은 채 차분하게 훑어가면서도, 순간 순간 격렬한 상징적 장면을 통해 관객의 긴장과 호흡 하나하나까지 잡아챈다.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마틴 스콜세지가 달라이 라마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은 '리처드 기어'를 통해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어찌보면, 달라이 라마를 둘러싼 혼란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달라이 라마와 리처드 기어의 겹침. 제국주의 문화산업의 첨병인 할리우드 스타에 의지한 달라이 라마라니! 결국 달라이 라마는 서양을 통해, 그들의 시각으로 담은 영상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온 셈이다.

그렇다면 영화속의 달라이 라마는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날 수 있는가. 영화가 실제 티베트 인으로 아마추어 연기자들을 기용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영어로 대사를 말할 때 느끼는 불편함과 같은 맥락이다.

티베트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 하나 없는 형편에서 서구의 시각을 거르면서 동아시아 자체의 시각으로 영화에 접근하기란 쉽지 않다. 달라이 라마는 분명 냉전과 탈냉전,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전근대와 근대, 지역주의와 세계화, 동양과 서양문명이 미묘하게 충돌하고 있는 그 어떤 지점이다. '쿤둔'은 그 중 한 두 지점에 머물렀다.

때문에 '쿤둔'을 통해서도 여전히 역사의 진실에 이르기는 힘들다.

"나는 부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승려일뿐"

■실제 만나본 달라이 라마

달라이라마(사진)에게 종교적 권위 같은 것은 없는 듯 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했고 유머 가득했고, 고단했던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온화해 보였다. 지난 6월 14일 달라이라마 방한추진위 사람들과 함께 인도 다람살라의 티베트 망명정부를 찾았을 때, 달라이라마는 한국에서 온 일행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최고의 명상 순간은 잠잘 때" 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김치를 본토에서 맛보고 싶다" 는 말로 방한 심경을 유쾌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부처로 불리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다소 부담스러운 질문에 그는 자신은 "한 사람의 승려일 뿐이다"고 말했다. 거기에 묘한 힘이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목소리였다. 굵으면서 부드럽게 울리는 목소리는 좌중을 압도했다. 가슴의 깊은 바닥에서 길러낸 소리 같았다. 동행했던 한 스님은 오랜 수행을 통해서만 울려 나올 수 있는 목소리라고 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