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의 암소 / 진중권 지음, 다우 발행일단 그의 그물코에 걸리면 성하게 남아 날 수 없다. 인간과 사회의 치부나 고정 관념를 헤집는 그의 글은 게릴라다. 그도 밝히듯 그는 체계적 사유보다는, 발터 벤야민 식의 파편적 인식을 따른다. 그는 "그저 이땅을 사는 한 사람의 자격으로 쓴 것"이라며 자신이 쓴 "잡글들"을 규정한다. '우연을 사유한다'는 들뢰즈의 표현으로, 그는 자신의 잡글쓰기를 옹호한다.
괴짜 철학자 진중권(37ㆍ서울시립대 강사)씨가 '샘이 깊은 물', '말' 등 잡지에 실었던 글을 모아 '시칠리아의 암소'를 펴냈다. '한줌의 부도덕'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1980, 1990년대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사건들에 대한 진중권식 해석학이다.
80년대 강철서신으로 학생운동을 주체사상으로 물들이더니 극우로 변신한 김영환의 일관된 논리는 결국 권력의지에 불과했다며 운을 뗀다. 광주의 5ㆍ18기념식 참가 직후 술판을 벌여 물의를 빚은 모래시계 세대에 대해서는, 얄밉지만 앞날에 축복 있기를 바란다며 유보 조항을 단다. 그의 글들은 좌ㆍ우를 떠나, 비판적 지식인의 색채를 띤다.
그의 글은 그래서 자유스럽다.
진씨가 특정 언론에 대해 퍼붓는 비판은 융단폭격을 방불케 한다. 이데올로기적 광기, 상업주의, 정치공작, 광신적 반공주의(즉 이념적 낙후성)가 결국 안보 상업주의, 황색 저널리즘 등 언론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적 수사들이 총동원된다. 그곳의 이념적 대부가 "국가주의는 건전한 공민의 윤리"라며 기득권의 입장을 표명한 사실을 밝히는 등 그는 혐오의 감정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그같은 몰상식한 신문이 현실적으로는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며 일반의 불매운동은 물론 지식인들의 기고ㆍ인터뷰 보이코트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이밖에도 전여옥, 서갑숙, 구성애 등 화제의 인물은 물론, 영어공용어 도입, 신보수주의 등 현재 사회의 이슈들도 도마에 올린다.
붓 가는대로 쓴글이라는 점에서 그의 글은 수필의 본래적 의미에 닿아 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어떤 이들의 심기를 대단히 불편하게 만든다. "점잖지 못하고, 애정이 결여돼 있으며, 예의가 없다"며 공박받을 가능성을 그도 충분히 예상한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란 자신의 삶을 미적ㆍ윤리적으로 조직하는 존재미학의 수단"이라며 자기 글의 정당성을 강력 주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문체에 대해 "철학과 문학 사이의 경계를 지움으로써, 논문식 글쓰기에 대해 드는 반기"라고 설명한다. 독특한 책 제목에 대해 그는 "평소 좋아하던 김현씨의 평론집 제목"이라고 말했다.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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