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학년도 수능시험에서 380점 이상 최상위권에 지난해 보다 적어도 2배가 넘는 수험생이 몰릴 것으로 예측되면서 이번 수능이 "난이도 조정에 실패한 무의미한 시험이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변별력 상실 논란
16일 서울 강남의 사립 명문 S고의 3학년 교무실. 교사들이 저마다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해마다 말도 못하게 떨어지는데 수능 점수가 이렇게 높게 나오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날 전국 고등학교와 학원가는 "이번 수능에서 언어영역과 수리탐구Ⅰ은 모든 수험생의 점수밭이나 다름없었다"며 "중학교 수준의 문제도 부지기수"라는 비난과 함께 '수능무용론'으로 들끓었다.
학교 전체 평균이 377점이라는 경기 비평준화지역 C고교 한 교사는 "수학은 80%가 공식에 대입하면 답이 나오는 기계적인 문제였다"면서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들만 손해를 보는 이상한 시험"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대성학원 이영덕(李永德) 평가관리실장은 "수능이 시작된 후 지난해까지 평균점수가 80여점이나 올라 이제는 존재가치가 위태로울 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박도순(朴道淳) 평가원장은 "상위권 학생을 기준으로 난이도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내년부터는 수능이 등급으로만 나누는 등 자격시험 성격이 될 예정이어서 '쉬운 출제' 원칙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들 불만 폭발
대학들은 "이런 수능 점수로 어떻게 학생을 가려 뽑으라는 말이냐"면서 크게 당혹해 하고 있다.
서울대 권두환(權斗煥) 교무처장은 "영역별 만점자가 2%만 되면 전국적으로 2만명 가까운 숫자가 돼 이제는 특차때 쓸 영역별 가중치도 별 변별력이 없게 됐다"면서 "신입생들의 수능 점수는 해마다 높아지지만 수학 등 기초학문 실력이 어이없을 만큼 떨어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려대 관계자는 "특차에서 동점자를 모두 합격시키면 정시모집에서 몇 명 뽑지도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도 있다"면서 "사실상 지필고사가 금지된 상태에서 수능은 더 쉬워질 내년이 더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제2외국어 무용론
'아버지께서 컴퓨터를 사주셨다. 감사의 말로 알맞은 것은? 답: Danke Schon.'
올 수능 독일어에서 1.5점이 배점된 객관식 문제다. 올해 처음 시행돼 26만여명이 응시한 제2외국어 6개 과목은 알파벳만 알고 있으면 풀수 있을 정도여서 도대체 왜 도입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교사들이 많다. 응시자가 대부분 상위권임을 감안하면 변별력은 '0'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첫 시험인 만큼 쉽게 내겠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방침을 계산하더라도 외국어를 잘하는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자는 당초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다.
독일어를 치른 수험생 한모(18)군은 "5분만에 답안작성까지 끝내고 심심해 프랑스어를 풀어봤더니 거의 다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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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이번 수능시험이 예상보다 쉽게 출제됨에 따라 과연 몇 명의 만점자가 나올지도 관심거리다.
역대 수능시험에서 만점자는 1999학년도와 2000학년도 한명씩 단 두명으로 모두 여학생. 이처럼 만점은 실력은 물론, 운까지 따라야 하는 '하늘이 내린 점수다.
그런데 16일 전국 일선고교와 입시학원들이 수험생들을 상대로 가채점을 한 결과 놀랍게도 만점자가 수십명이나 나왔다.
서울의 S고와 DㆍH외고에서 각 1명씩 가채점 만점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대전 등 지방에서도 3명이상이 만점으로 나타났다. 신흥 명문인 경기 S고는 재수생 2명이 만점이라고 밝혔고, 서울 J학원은 "최소한 4명", D학원은 "지금까지 2명"이라고 알려 왔다.
물론 실제 발표 때 결과는 이와 다를 수 있다. 본인이 쓴 답을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가채점에서 만점이 나와도 '천기누설'을 우려해 감추는 경우가 많고, 수험생 역시 신중히 처신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올해 수능 만점자는 수십명이상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입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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