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오늘 지중해와 홍해ㆍ인도양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됐다. 이 운하의 개통으로 런던-싱가포르 항로는 2만4,500km에서 1만5,027km로 단축됐다. 그 전에는 유럽에서 배를 타고 아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대륙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수에즈 지협(地峽)에 운하를 파서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고대부터 있었다. 그러나 지중해와 홍해의 수위차(水位差)가 10m나 되어서 그 시기의 토목 기술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된 19세기에 들어서도 운하의 개통이 프랑스를 비롯한 대륙 국가들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영국 자본가들과 정치인들의 반대로 개착(開鑿) 계획이 여러 차례 무산되었다.
1854년 이집트의 태수 마호메트 사이드 파샤는 프랑스의 외교관 페르디낭 마리 드 레셉스에게 운하 개착 특허권과 수에즈 지협 조차권을 주었고, 56년에는 이집트의 종주국이던 터키도 이를 승인했다. 레셉스는 이에 따라 58년에 수에즈 운하 회사를 이집트 법인으로 설립하고 59년부터 공사에 착수해 10년만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수에즈 운하회사의 주식은 프랑스인들과 이집트 태수가 소화했다.
그러나 당초 수에즈 운하의 개착에 반대했던 영국은 막상 운하가 뚫리자 태도를 바꾸어 이집트 정부의 주식을 매입한 뒤 운하 경영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했다. 1956년 이집트 나세르 정부가 수에즈 운하 회사를 국유화하기까지 운하는 실질적으로 영국의 관할 아래 있었다.
국유화 선언 직후 운하 탈환을 꿈꾼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도와 수에즈 전쟁을 일으켜 운하를 점령했지만, 국제 여론의 악화에 따른 유엔 결의로 그 이듬해 철군했다. 전쟁의 불씨는 늘 경제적 이해 관계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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