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은 남에게 형제냐, 적이냐'. 이런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가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경의선 철도 복원을 두고 한편에서는 남북 경제가 금세 하나가 될 듯이 떠들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이없게도 "북에 남침을 위한 속도전 통로를 열어 주는 것"이라는 데까지 나가 버린다.식량 지원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순수한 동포애' 와 '군량미가 될 지도 모르는데 퍼다준다'는 주장이 극단적으로 맞선다.
"남과 북은 형제다. 그러나 50년 이상 낯을 붉히며 대치해 왔고 이제 그동안 쌓인 적대감을 해소해 나갈 길을 찾고 있다." 이같은 합리적인 목소리는 자꾸 줄어든다.
국회에서 돌출한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의 '민주당은 조선 노동당의 2중대' 발언의 뿌리도 바로 이 이분법적 사고에 닿아 있다. 그의 발언은 민주당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반통일적이며 비민주적이다. 한나라당도 김 의원의 발언은 당론과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런 원색적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정부ㆍ여당이나 야당 모두 자유로울 수 있는 지 의문이다. 혹시 그런 발언이 터져 나올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거나 빌미를 주지는 않았는 지 살펴 보아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후 정부는 남북관계 진전의 가시적 효과를 내기 위해 조급증을 숨기지 못했다.
"북을 변화시킨다"는 햇볕정책의 알맹이가 "북은 (형제인만큼) 남쪽이 원하는 대로 반드시 변할 것" 이라는 명제로 바뀌었다.
'동포' 라는 명분 아래 대북 지원 과정에서 합당한 절차를 적당히 생략하거나 무시해 버리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남북문제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반대세력의 의심도 사게 됐다.
그런데도 북은 남쪽 정부의 기대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각종 대화가 그쪽 사정과 체제 논리에 따라서만 진행되는 것으로 남쪽 사람들에게는 보였다.
남쪽에서는 당연히 북이 변한 것이 뭐가 있느냐는 의문이 생겨났다.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 사정으로 대북지원에 눈쌀을 찌프리는 사람이 늘었다. 이러니 북은 '적' 일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
"북이 남과 정상회담을 하고, 화해와 협력에 나선 것이 곧 체제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냉정히 말하면 생존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선은 대화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정부는 처음부터 이렇게 얘기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야당도 남북문제에 대해 당리를 떠나 대국적으로 대처해 왔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남북대화에서 소외된 데서 오는 서운함 때문에 무조건 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대해 온 것은 아닌지를.
야당이 정부의 전략상 허점이나 절차상 잘못을 혹독히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야당이 근본적으로 "김정일과 북한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본다면 햇볕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
북한이 남북 대화와 함께 대미 협상, 유렵 각국과의 수교회담에 나서고 있는 것은 체제 유지와 생존을 위한 전략이지만 그 자체가 전쟁을 불사하겠다던 '벼랑끝 외교'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변화라는 것을 야당이 별로 인정하지 않기에 하는 지적이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적'이라는 말이다.
남북 정상회담후 지금까지 여야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마치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패에 따라 한 쪽은 이득을 보고, 다른 한 쪽은 손해를 보는 것처럼. 여야는 이제부터라도 정치적 이해 다툼으로 남북문제가 정쟁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한 자리에 앉아 진지한 토론을 통해 '북은 적이냐, 형제냐' 식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최규식 ㆍ편집국 부국장 겸 통일문제연구소장 kscho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