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과학의 발달로 인류가 수천년간 쌓아 온 문명도 하루아침 마수걸이에 지나지 않는다.손톱만한 전자 칩 한 개에 비디오 오디오를 총 망라하는 영화 수 백편을 기억할 수 있다니 어지간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도 변화에 둔감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툭 하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그런 부류가 아닐까 모르겠다.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실감한다. 어느새 검정머리 보다는 노랑머리 젊은이들을 많이 본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어쩌구 하는 옛말은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다. 어디 머리칼 뿐인가. 여자들의 얼굴에서 한국 원형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TV 브라운관에서는 하늘의 별 따기다. 하나 같이 오똑한 콧날에 눈은 크고 턱은 갸름한 인조 얼굴이다. 한국 여자에 서양 여자 얼굴을 오버랩 시킨 모습이다.
■성형외과 의사들 얘기를 들으면 웬만한 젊은 여자들 중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눈과 코, 턱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60~70년대 까지 서양 사람들을 코쟁이 또는 뺑코, 노랑머리라고 불렀다. 코가 큰 것과 머리칼 색깔이 우리네와 유난히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노랑머리와 뺑코, 이제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중 하나다.
■이런 추세로 몇 백년이 흐르면 우리의 후손들이 뼁코와 노랑머리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자꾸 쓰는 쪽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쪽은 퇴화한다는 다윈의 진화론을 원용한다면 말이다. 오랜 기간 계속해서 눈을 째고 코를 높이며, 턱과 볼따구니를 깎아 낸다면 결국은 그런 축적된 욕구가 한국인의 DNA에 영향을 주어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염려 해보는 것이다.
이런 염려는 과학이 아닌, 정서적 접근에 기인한다. 성형얼굴이 예뻐 보인다면 서구의 미적 가치관에 물든 탓이다. 수 만년 광활한 몽고대륙의 척박한 기후를 이겨 내고 한반도의 사계절에 적응한 얼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과 코, 적당한 광대뼈는 당연히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덧붙여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정치와 공직사회에도 이런 진화론적 변화는 없을까 하고.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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