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내가 밟은 북한 땅은 평양 뿐 아니라 평안남도, 황해도, 함경남도, 강원도 일대였다. 내가 존경하는 국제옥수수재단 회원 한 분의 고향 땅에 마침 옥수수 연구시험장이 있어 그분에게 고향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북한에 갈 때마다 그분의 추억이 서린 곳을 돌아본다.그리곤 돌아올 때는 그분 고향의 옥수수와 과일 몇 개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와서 전해주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의 주름진 얼굴과 눈가에는 항상 물기가 가득해진다. 그분 마음 속의 그리움과 슬픔을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지난 9월 29일부터 10월 7일까지 15번째 북한을 둘러 보고 돌아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호전되고 있던 식량 문제가 안타깝게도 올해 다시 악화하고 있다는 우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5월부터 7월까지 67일 동안 지독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옥수수의 알이 여물 틈이 없었고 뿌리와 줄기도 충분히 자라지 못했다.
여기에다 더위로 병과 벌레가 많아진 데다 남쪽에서 보내준 비료조차 수분이 부족해 흡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옥수수와 벼 감자 등 모든 주곡이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전국적으로 약 100만 톤 이상 감소가 예상된다. 올해 북한의 총 곡물 생산량은 옥수수 쌀 감자 조 수수 메밀 등을 모두 합쳐도 370만 톤을 넘지 못할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에 있는 옥수수 시험장을 오가며 야윈 동포들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래도 늦게라도 비가 내려 남새(무ㆍ배추 등)농사가 잘됐고, 남쪽 국민들이 마련해준 수원 19호 종자로 직파한 옥수수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본 것을 생각하면 위안이 되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아무래도 내년 봄 '보릿고개'가 걱정이 된다. 북한에서 식량이 부족하면 가장 힘든 계층은 공장 노동자이며 농민들은 그나마 논밭 가까이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피해를 적게 본다. 어린이와 아이를 가진 여성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정 자체가 역설적으로 옥수수 연구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나에게 확신시켜 주기도 한다.
북한은 옥수수 나라이며 옥수수는 단위 당 소출이 가장 높은 작물로 북한 주민이 먹는 '제1의 주곡'이다. 내가 벌이고 있는 옥수수 사업과 함께 남북 협상이 하루라도 빨리 통일로 이어져 남북 형제가 함께 어울려 춤추는 때를 꿈꿔 본다.
/김순권 경북대석좌교수·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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