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최동원(42)이다.경남고, 연세대를 나와 1983년 프로에 입문한후 90년 은퇴할 때까지 그만큼 주목을 받은 선수도 드물다. 아마시절 한국야구가 세계정상으로 군림할 때 항상 그가 있었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그와 관련된 숱한 얘기거리가 야구팬들사이에 회자됐다. 84년 롯데에서 뛰던 그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거둔 4승을 모두 올리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칠테면 쳐보라는 식의 시원시원한 강속구는 트레이드 마크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으로 활동중인 선동렬(37)과 더불어 한국야구사에 가장 뛰어난 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야구인' 최동원에게는 항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자연인 최동원'에 대한 평가는 곱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현역시절 최고의 스타였기에 잡음 또한 끊이지 않았다. 독불장군, 인간성이 못됐다는 등 그를 깎아내리는 별의별 소문들이 흘러나오곤 했다. 이 때문에 90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야구판에서 속칭 '왕따'를 당해 10년간 야구와 담을 쌓고 지냈다.
"내게도 뭔가 잘못된 게 있었지 않았겠느냐. 나를 험담하던 사람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그의 말마따나 지난 세월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이제 그는 한화의 투수코치로 내정돼 야구판에 돌아왔다. 이남헌 한화사장은 "지난해 부산에서 최동원씨가 가족과 함께 야구구경을 한 적이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음료수 몇병을 사들고 그를 찾았을 때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의 인연이 기회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가 야구판에 복귀한 것은 다행이다.사람들은 흔히 덫칠해진 스타에 익숙해져 있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매도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도 한다.그러나 그 하나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없다.
'자연인' 최동원에게 씌워졌던 멍에가 벗겨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야구인' 최동원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줘야 할 때다. 그는 우리의 소중한 '스타'중 한명이기 때문이다.
정연석기자
y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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