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접어든 '태조왕건'책사(策士)가 나라를 흔든다. 왕의 눈을 흐리게 한다. 미륵불의 현신이라는 궁예도, 천하의 영웅호걸 견훤도 그 앞에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책사 아지태(김인태)에 의해 궁예는 탐욕과 야욕을 부리기 시작한다. 인자함을 잃어간다. 간악한 책사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왕의 약점과 욕망을 자극한다. 백성의 신음소리를 막는다.
아지태는 궁예를 광기로 몰아간다. 신라왕의 서자라는, 그래서 더욱 자신을 감추려는 궁예의 심리를 이용해 동방대국의 허황된 야망을 갖게 한다. 또 하나의 책사이자 심복인 종간(김갑수)의 반대를 묵살하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기고 904년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꾼다.
자신의 가장 큰 지원세력인 고구려의 맥을 이어가려는 송악 호족들을 잃게 만든다. 무리한 세금과 노역으로 민심을 등지게 한다. 철원궁 건설현장에서 부상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보며 아지태는 냉정하게 말한다. "대 역사를 이루는데 그깟 몇 명의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간악한 책사는 충신을 가로막는다. 아지태는 궁예의 최측근이자 또 다른 책사인 종간(김갑수)의 현명하고 냉정한 판단과 충성심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청주 출신인 그는 나중에 동향의 충신인 신방과 입전까지 참소한다. 왕건 중심의 역사관을 가진다면 그를 끝없이 경계하는 지략가인 종간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궁예에게 종간은 진정한 충신이다.
파멸로 이끄는 아지태와 그를 막으려는 종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KBS 1TV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은 제 2막을 맞았다. 그 갈등속에 천하의 구세주인 궁예가 폭군으로 떨어지고 있다. 농민과 하층민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출발한 그의 왕국이 무너져 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뒤에 견훤도 비슷한 운명을 맞는다. 그에게도 능환(정진)과 최승우(전무송)이란 두 책사가 있다. 처음 힘을 합쳐 무진주를 공략한 그들이 대야성 공격실패와 금성(나주)을 왕건에 뺏기면서 갈등을 시작한다.
사려깊고 판단력이 뛰어난 최승우에 비해 다소 충동적이고 과시적인 능환이 견훤의 장남 신검과 함께 반역을 도모한다. 후백제는 그것으로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사료에 이들의 기록이 거의 없다. 아지태만 '궁예에 붙어 정치를 혼란시켜 갈등을 촉발한 인물' 이란 언급이 있을 뿐 나머지는 이름만 나온다. 드라마는 이들을 상상력으로 살려냈다.
능환이 견훤 부자의 갈등을 촉발시킨다는 것도 가설이다. 안영동 CP 는 "책사들의 갈등과 왕의 잘못된 선택은 당연히 궁예와 견훤의 파멸의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 이라고 했다.
영웅의 파멸은 그들 스스로에게 있지 않다. '인의 장막' 이 언제나 나라를 무너뜨린다.
'태조 왕건'은 그것을 이야기하려 한다. 나중에 왕건이 책사 최응의 뛰어난 지략과 역량을 받아들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의 거울이고자하는 역사 드라마의 존재 이유이다. 그것이 초반 궁예의 이상적 정치사상에 이어 '태조 왕건' 을 재미있고 유익한 드라마로 이끄는 힘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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