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에 봉착한 구조개혁의 가장 큰 적(敵)은 '개혁피로 증후군'이다. '국민의 정부' 3년의 개혁성과가 나라밖보다 안에서 더 평가절하되고, 갈수록 탄력을 잃어가는 이유도 바로 국민적 개혁 컨센서스가 무너지는데 있다.하지만 개혁 피로증의 유일한 치유법 또한 중단없는 개혁이다. 중앙대 안충영 교수는 "개혁 피로증의 원인은 단기간내 성과를 원하는 국민, 단기간내 성과를 보여주려는 정부에 있다"며 "정부는 명확한 목표제시와 일관된 실천으로 국민들에게 다시 개혁 필요성부터 납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초기 기꺼이 허리띠를 졸라맸던 경제주체들을 개혁전선에서 이탈케한 가장 큰 요인중 하나는 '몰아치기식' 구조조정이다.
1998년 5월 55개업체 퇴출조치 이후 부실기업 정리(대우 제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2년반이 지나 다시 악몽처럼 52개 기업의 '패키지 퇴출'이 이뤄지고 있다. 금융구조조정도 98년 퇴출ㆍ합병 바람 이후 '올스톱'됐다가 2년만에 같은 길을 답습하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 쉴새 없이 몰아친 뒤 손을 놓고 있다가 또다시 '진짜 마지막'이라며 한꺼번에 뒤흔드는 개혁스타일은 그렇지 않아도 피폐해진 국민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고 있다.
구조조정은 제도에 의한 항시적 시장과정이지, 결코 공권력의 이벤트가 될 수 없다.
연세대 하성근 교수는 "부실기업이 금융기관에 의해 상시 퇴출될 수 있는 시스템 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에 의한 금융ㆍ기업구조조정이 연말 종료되더라도, 한국경제가 넘어야 할 산은 너무도 많다. 경기연(軟)착륙, 빈부ㆍ지역ㆍ산업간 격차해소, 외환자유화와 자본도피..
그러나 가장 걱정스런 대목은 역시 '정치'다.
정치가 막가는 나라치고 경제가 잘 된 나라는 없고, 경제가 안정된 나라치고 정치가 불안한 나라는 없다.
선동적 인기영합정책으로 주기적 위기를 겪는 중남미, 경제와는 관계없이 정치불안만으로도 외환위기가 엄습할 수 있음을 입증해준 최근의 태국ㆍ필리핀ㆍ인도네시아ㆍ대만사태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한국경제에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집권 후반부 레임덕은 불가피하고, 그럴 수록 정국주도권 확보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것이다. 대북(對北), 정계개편, 때론 사정(司正)까지 여러 대안은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경제안정보다 효과적일 수는 없다.
성(性)추문으로 도덕성 위기에까지 몰렸던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레임덕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경제호황 덕분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는 물론 기업 노조 모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고, 국민들도 풀어놓은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위기는 바람처럼 우리를 엄습할 것이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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