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이나 일본인과는 달리 한국인의 성(姓)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는 일생 동안 변하는 일이 없다.굳은 맹세를 하면서 그 맹세를 지키지 못하면 "성을 갈겠다"고 말하는 관습이 아직 남아 있는 데서도 드러나듯,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성을 가는 것을 최대의 치욕으로 여긴다. 그러나 20세기의 어느 시점에 한국인은 그런 치욕을 집단적으로 겪었다.
1939년 11월 10일 일제는 조선민사령을 개정해 조선 민족 고유의 성명제를 폐지하고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도입하면서, 그 이듬해 2월부터 8월 10일 사이에 모든 조선인이 '씨(氏)'를 결정해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이른바 창씨개명의 시행이다.
조선총독부는 이것을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 관헌을 동원해 협박을 일삼았고, 창씨를 하지 않는 사람의 자제에게는 각급 학교의 입학을 거부했다.
또 창씨하지 않은 호주는 '비국민' '후테이센징(不逞鮮人)'의 낙인을 찍어 사찰을 하고, 노무 징용의 우선 대상으로 삼거나 식량 배급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갖은 사회적 제재를 가했다. 이런 강압 속에서 다수의 한국인들은 성을 갈고 이름을 바꿨다. 그러니, 창씨개명 자체를 친일의 징표로서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골적인 친일 인사들의 일본 이름이 우리에게 슬픔을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광복군 장교 출신으로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 1975년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의문사(疑問死)한 장준하는 생전에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셋 있는데, 첫째는 오카모토 미노루, 둘째는 다카키 마사오, 셋째는 박정희"라고 말한 바 있다. 세 사람은 동일인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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