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유례없는 혼전(混戰)이 된 것은 유권자들이 전에 없이 이중적 잣대로 후보 자질을 평가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재미있다.대개 후보의 능력과 인품, 그러니까 총체적 자질을 함께 평가하는 틀을 벗어나 두 가지 자질을 따로 떼어놓고 가늠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민주당 고어 후보가 유권자들의 이성적 지지를 얻은 반면 공화당의 부시 후보는 그 감성을 붙잡았고, 이 때문에 막판까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왜 이중 잣대인가? 96년 대선 때 클린턴의 수석 선거참모였던 딕 모리스는 그 근본원인을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에서 찾는다.
미국인들은 대통령의 위선적이고 분별없는 언행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한 동안 미국은 번영과 평화를 누렸다. 그래서 인간 됨됨은 부정하면서도 직무능력은 높이 평가, `좋은 대통령, 나쁜 사람`이란 분열된 인식을 갖게 됐다. 이런 유권자 의식이 선거전에 그대로 투영됐다는 지적이다.
■미국인들은 고어의 정책에 공감했지만, 부시의 인간성에 호감을 느꼈다. 고어는 유능하고 냉철한 반면, 부시는 허술하지만 신뢰할만한 면모를 보였다.
유권자들이 막판까지 부시에 기운 것은 클린턴의 부도덕성을 잊지 못한 탓이란 지적도 있다. 어쨌든 케네디-닉슨 이래 최대 격전은 유권자들의 최근 경험이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닉슨의 음험함을 경험한 뒤 도덕성을 앞세운 카터를 택했다. 그의 무능을 겪은 뒤에는 단호한 비전을 제시한 레이건을 뽑았다. 이어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실무경험이 많은 부시를 택했고, 다음은 건조한 부시 대신 클린턴의 윤기나는 매력을 골랐다.
우리 유권자들은 정치군인에게 시달린 뒤 민주투사를 선택했고, 그의 무능을 겪은 다음 `준비된 대통령'을 뽑았다. 그러면 다음 선택 기준은? 연고주의 배제, 부패 혐오, 언행 일치 등등이 아닐까. 자신과 주변에 엄격한 도덕성과 투명성이 무엇보다 아쉽다는 얘기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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