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인축제 개막작 '민며느리' 감독 최은희“여성영화인모임이 1964년 개봉된 후 필름의 행방이 묘연했던 `민며느리'의 필름을 찾아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13분 가량의 녹음 테이프가 분실돼 재녹음을 하게 됐다. 성우 천선녀씨 대신 13분 가량은 내 목소리로 더빙을 했다.”
1960년대를 풍미한 영화배우 최은희(74)씨는 자신이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영화 `민며느리' 상영을 앞두고 들떠 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은 채 영상자료원에 한켠에 버려져 있었던 이 영화가 개봉 후 36년만에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여성영화인 축제에서 선보일 이 영화는 남편 신상옥 감독의 권유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우리나라 3번째 여성감독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몰락한 양반가의 규수(최은희)가 부잣집 민며느리로 들어가 겪는 고초를 그렸는데, 시어머니인 황정순과 친정어머니 한은진을 통해 고부관계 모녀관계의 저변에 흐르는 미묘한 여성 심리를 잘 포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치판단을 배제하더라고 민며느리는 우리 민족의 하나의 풍습이다. 이런 소재는 리메이크해도 훌륭한 작품이 될 것이다.”
최씨는 북한 체류중 찍은 `돌아오지 않는 밀사'로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래는 감독 신상옥이었고, 그는 조감독이었는데 “최여사를 감독으로 하자”는 북한측 권유로 수상을 하게 됐다. 최씨는 데뷔작 `새로운 맹세' 촬영 때부터 주연이면서 `기록'을 맡아 영화 스태프로도 참여했다.
신 감독과의 결혼 후에는 집에 포터블 영사기를 걸어놓고 편집을 했을 정도이니 감독수업도 충분히 한 셈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영화 미치광이' 인 신 감독과의 결혼생활 역시 가정이라기 보다는 영화학교 같았다”
최씨는 1978년의 피랍 전 부부의 꿈이었던 영화학교를 세우는 일을 계획 중이다. “아직은 비밀이지만 연내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했다. 요즘 그는 사군자를 치는 것으로 시작한 한국화에 매달리고 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단 `신협'의 `징기스칸'을 내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리는 작업에도 열중이다.
카리스마가 강한 선 굵은 여배우인 그가 아끼는 출연작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소금'. 연기에 관한 한 백전노장이지만 아직도 영화를 볼 때면 당당해지기는커녕 자꾸만 움츠러든다고 한다. 때문에 후배들에게 뼈있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여배우들이 옷을 벗어 화제를 모으기 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하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아직 그는 자존심이 몹시 강한 `배우'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여성영화인의 과거.현재.미래 조명
이 땅에서 여성이 영화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여성영화인모임 (대표 채윤희)주최로 10~ 12일 문화일보홀에서 열리는 제1회 여성영화인축제는 바로 그런 여성영화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는 자리이다.
`발굴! 감독 최은희'라는 제목으로 배우 최은희씨의 감독 데뷔작 `민며느리'(10일 오후 6시)를 상영하고, 충무로에서 활동중인 여성제작자를 집중 조명한다.
오정완의 `반칙왕' (12일 오후 7시), 심재명의 `공동경비구역 JSA'(10일 오후 2시), 유희숙의 `파란대문'(11일 낮 12시)이 상영되며, 토론의 장도 마련한다. 여성감독의 단편공모작 수상작 발표와 `올해의 여성영화인' 도 선정, 발표한다.
`은행나무침대' `이재수의 난' `단적비연수' 등에 참여했던 특수분장, 의상 담당 여성영화인의 작품이 전시되고 최초의 여성감독인 박남옥의 `미망인', 해방전 조선키네마 영화사에서 활동했던 김영희 편집기사 등 여성 영화인의 족적을 살펴보는 영상물도 상영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제작자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여성감독의 독특한 사회비판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세친구'의 임순례, `낮은 목소리'의 변영주 등을 제외시키는 아쉬움이 남는다. (02)3673_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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