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한 인상파 그림들의 화려한 서울 나들이를 보며, 몇 해 전 그 미술관에서 본 여인을 떠올린다. 모네 그림 앞이었던 것 같다.화려하게 차려 입은 30세 가량의 여인이 미술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냥 퍼질러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승처럼 꼿꼿이 정좌한 채 그림을 응시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그림과 대결이라도 하듯 몇 시간이라도 미동도 하지 않을 듯한 기세가 자못 충격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숙연한 느낌으로 변했다.
그 느낌은 마침내 `모네 그림을 감상하려면 저렇게 치열해야 하리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모네는 겨울 바다도 많이 그렸다. 그는 추운 해풍에 손이 얼어 잘 움직이지 않으면 불을 피워 물을 덥힌 후, 그 물에 언 손을 녹인 뒤 다시 그렸다.
그래서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네의 유화에는 차가운 해풍에 날려온 모래가 지금까지 섞여 있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은 화사한 빛깔로 충만해 있지만 인상파 화가들은 대부분 치열하게 살고 작업했다.
파리의 박물관·미술관에서는 초등학생 20~30명이 이 방 저 방으로 몰려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이 낚시 의자처럼 간편한 의자를 들고 다니며 명화 앞에 자리를 잡으면, 인솔 교사나 미술관 학예관이 그림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세계적 화가로 추앙받고 있는 자신의 조상이 남겨 준 명화 앞에서 미술교육을 받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외국의 특별전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입장하기 위해 늘어선 긴 줄이다. 그 줄에 서면 명화를 보게 되는 기대와 설렘이 젖어 온다.
우리 덕수궁에서도 모처럼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토요일 오후 덕수궁에는 `오르세미술관 한국전-인상파와 근대미술' 을 보려는 인파가 200m 쯤 되는 줄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줄에 서서 단풍과 마른 풀이 풍기는 청량한 가을 냄새를 맡으며 기다리는 1시간 여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인상파 작품은 삶을 긍정적으로 물들이는 따스하고 강력한 에너지가 있는 향일성(向日性)의 그림이다.
그 인상파 화가를 낳은 것은 프랑스의 햇빛 눈부신 평원과 그림을 사랑하는 문화적 토양이었다. 우리의 재불 화가 중에도 프랑스 정부로부터 집과 작업실을 무료로 제공받으며 작업하고 있는 이가 여럿 있다.
그러나 전시장을 나오면 온기 없는 우리의 미술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 1월1일부터 수집가가 소장한 그림이나 조각을 팔 경우 양도 차익에 대해 종합소득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미술협회와 미술평론가협회, 화랑협회 등 미술단체들은 이 문제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수집가들이 부담하게 되는 종소세를 놓고 왜 작가와 평론가, 화상들이 전면에 나서 반대하는 것인가. 이들은 미술계 전반이 침체화·황폐화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종소세가 시행되면 먼저 미술품 수집가가 수집할 의욕을 잃고, 다음 화랑들이 문을 닫으며, 화가의 수입이 끊겨 결국 미술계 전체가 침체되고 만다는 것이다.
인사동 화랑가에서는 IMF 경제난을 겪으며 10여개의 화랑이 문을 닫았다. 또 미술계 조사에 따르면 지금 국내 전 미술인 중 월 100만원 미만의 소득자가 65%에 달하며, 30% 이상이 공사판 등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미술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도 아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작품 가격이 상승하는 것과 하락하는 것은 반반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술품은 국가 세수를 증가시켜줄 대상물이기 이전에, 우리와 후손에게 풍요로움과 행복감,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인상파전이 열리고 있는 덕수궁에 가면, 침체돼 있는 우리 미술계에 희망을 주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이 명료하게 이해될 것이다.
박래부 편집국 부국장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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